"재의 자체 막는 것은 위법 행위
국회선진화법 합의 취지도 부정"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의 자동폐기를 당론으로 결정한 것은 헌법은 물론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거세다. 야당의 거듭된 재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 직무를 유기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자동폐기할 법률적 근거 없어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안의 국회 처리 절차는 헌법 54조3항에 근거해 진행된다. 해당 조항은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가 있을 때 국회는 재의에 부친다’는 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이후엔 본회의에서 재의결되는 조건만 명시했을 뿐, 다수 집권당이 본회의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거나, 당론으로 자동폐기할 수 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집권 다수당이 ‘자동폐기’라는 방향으로 당론을 잡고 소속 의원들에게 불참을 독려하거나 반대표를 유도하는 것은 재의 이후 정치 기술의 문제이지, 재의 자체를 막는 건 위법이란 뜻이다.
정치 전문가들도 여당의 자동폐기 당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8일 “대통령이 법이 정한대로 거부권을 행사했으면 여당도 법에 따라 재의 이후 가결과 부결의 방법을 논의해야지 ‘자동부결시키자’고 말할 근거는 없다”며 “대통령의 심중과 (유승민) 원내대표 문제는 자기들끼리 당내에서 싸워야 할 문제지 절대로 재의 절차와 연계될 사안은 아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윤태곤 정치평론가도 “(여당이 자동폐기 당론 이유로 든) ‘당청갈등 해소’가 민주적 절차보다 우선될 수 없다”며 “대통령도 헌법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여당도 법에 따라 재의 절차를 열고 반대를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여당의 자동폐기 결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도해 통과시킨 국회선진화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국회선진화법은 본회의장에서의 몸싸움과 강행처리를 막고 여야 합의와 타협을 통해 법안 처리를 약속한 법안으로, 2013년 3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야당의 반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자 사활을 걸고 통과시킨 법안이다.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아 조언 하나 하겠다”고 말문을 뗀 뒤, “(헌법과 선진화법이 있는데도) 새누리당이 의총을 열어 재의하지 않겠다 결론을 내서 재의를 요구한 대통령이 새누리당에 화난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정의화 의장의 여권 설득도 난관
여권에서는 택시법의 사례를 들어 과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의 경우 대부분 자동폐기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지만 국회법과는 상황 자체가 달랐다. 윤태곤 평론가는 “택시법은 19대 총선 직전 여야가 표를 의식해 급하게 정부로 넘긴 법안이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충분했고 거부권 행사와 폐기 이후 대체입법됐다”며 “직접 비교 대상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원칙적으로 재의를 위한 본회의를 개최한다는 방침이지만 여당이 순순히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여당이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정 의장의 의지도 시험을 받는 모양새다. 정 의장은 이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지난 25일에도 밝혔듯이) 헌법에 따라 국회는 재의를 전체 의원에게 부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다”면서도 “새누리당의 사정이 있고 아직 시간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여당을 설득해 당당히 재의에 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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