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집유 1년 선고한 2심 파기환송
경찰체포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더라도 경찰의 직무집행이 위법했다면 이를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집회 현장에서 빚어지는 경찰과 참가자 간 법률 시비에 대해 사법부가 기준을 제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공무집행방해, 공용물건손상, 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엄모(46)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엄씨는 2009년 12월 빈곤사회연대 회원 등 80여명과 함께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노숙인 추모 문화제’에 참석했다. 엄씨를 포함해 참석자들이 “노숙자 인권을 보장하라”며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구호를 제창, 시위에 나서자 경찰은 ‘문화제를 빙자한 미신고 옥외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3차례 해산명령을 내렸다. 엄씨는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자신을 경찰이 체포하려 하자 저항했고, 이 과정서 한 경찰의 무전기를 빼앗아 얼굴을 때려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먼저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야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집회의 자유, 헌법정신에 비춰 불법시위와 집회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경찰의 해산명령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 법적 사유가 구체적으로 고지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은 “회원 몇 명이 규탄발언을 했을 뿐 장소이탈이나 행진시도, 폭력행위 등도 전혀 없어 위험이 초래된 경우라고 볼 수 없다”며 “해당 집회로 인해 공공질서에 위험이 초래된 경우라고 보기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한 것은 위법한 공무집행”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위법한 체포과정에 대항해 경찰을 폭행한 것은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무전기를 손상한 점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경찰의 집무집행을 정당한 것으로 보고 엄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형량을 높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해당 집회로 인해 공공질서에 직접적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됐는지를 두고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며 “이는 집시법 상 해산명령 불응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해산명령과 현행범 체포가 적법했는지를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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