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확진자 늘어가는 와중에 정부여당은 대면 진료가 원칙인
현행 의료법 개정 문제 꺼내… 디지털 헬스케어 판 깔아주기
기계가 의술을 대체하는 일 절제돼야…
가난한 사람들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의료 생태계 지켜야
재난은 큰돈이 되는 장사다.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지난 수년간 보건의료계가 맹렬히 반대했던 원격의료 도입이 메르스 사태를 틈타 이뤄지고 있다.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한시적 조치라는 단서가 붙긴 했으나, 그 수혜자가 하필이면 메르스 확산지인 삼성서울병원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신수종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삼성으로선 이번 사태가 위기 속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삼성은 정보기술(IT)융합의료기기 사업 분야에서만 2020년까지 27조원 이상의 매출을 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헬스케어 사업의 규모는 2009년에 이미 3조2,000억달러에 도달했고, 2020년에는 헬스케어 제품만 1조2,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이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의 블루오션으로 헬스케어 사업을 노리고 있다. 삼성, 구글, 애플의 치열한 경쟁도 본격화됐다.
이만한 매출액을 달성하기 위해선 경쟁력 있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돈을 벌 제반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국가와 시장이 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그들이 말하는 블루오션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시장 경제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국민적 생활 방식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복합적인 사회적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생태계를 둘러싼 사람들의 상식과 감성, 행동 능력과 패턴, 소통 방식, 각종 법령과 제도, 금융 시스템에 이르는 사회 전반이 다시 디자인되는 대장정이다. 그런데 메르스는 그 모든 난망한 과정을 단순화시킬 방법을 기업에게 계시하고 있다.
전염병이 원격진료 수요 만들어
우선 오래된 상식이 메르스에 무너졌다. 환자가 병보다 의료진과 병원을 더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병원은 환자를 낫게 하는 곳이 아니라 전염병의 확산지로 전락했다. 초일류 병원을 자처하던 곳마저 취약했다. 26일 기준으로 메르스 확진자 181명 가운데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을 포함해 병원 관련 종사자 수는 35명에 달한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타액 한 방울 들어올 수 없는 정보통신망에 가상의 진료실을 세우고 환자를 끌어들이기 딱 좋은 때가 되었다. 환자 입장에선 의료서비스를 받되, 의료진의 의심스러운 몸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메르스로 인한 격리대상자의 수도 한 달여 만에 1만명을 넘어섰다. 전염되면 지역사회와 국가로부터 비국민 취급을 받는다는 불안이 일상 곳곳에 팽배하다.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이들에게 전염되고 있다. 공포와 불안을 통해 사회를 재디자인하는 전염병의 힘은 그 어떤 악랄한 권력도 가볍게 압도해 버린다.
전염병과 맞서 싸워야 할 보건당국의 대응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는 건 대통령뿐인 듯싶다. 이러니 병원은커녕 외출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장기화하고, 내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병원도 국가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휴대폰을 붙잡고 각자도생해야 한다. 각종 의료장비를 손바닥 위에 압축해 놓을 수 있다면 이들의 건강과 안전에 도움이 될까?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은 이런 니즈를 대환영한다. 지금처럼 방역 시스템이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제2의 메르스, 제3의 전염병 대란이 이어질 가능성은 다분하다.
의료법 개정 명분 주는 메르스
언제 끝날지 모를 비상상태를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소비에 길들고, 이 재난이 어떤 이들의 배를 불리게 될지 캐물어야 한다.
원격진료라고 해봐야 현재로썬 전화와 팩스로 처방을 받는 수준이다.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는 현행 법령에 따르면,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 진료는 불법이다. 이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환자 곁엔 의사와 의료진이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었다. 사람이 수행해야 할 의술을 기계가 대체하는 일은 엄격히 절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과 생명은 비트(bit)로 전환할 수 있는 신호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오히려 디지털 전환이 불가능한 노이즈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의 존엄을 증명한다. 이를 존중하고 숙고하는 일을 기계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기계는 이런 세계를 모른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선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공식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숫자로 바뀔 수 있는 것만이 정보로 선택되고 나머지는 노이즈로 취급된다.
디지털로 바꿀 수 없는 것을 가늠할 때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원칙은 확고히 지켜져야 한다. 사람의 임무를 저버린 사회는 가혹한 게임 값을 치르게 된다. 그 파국을 누가 고민하고 있을까? 정부 여당과 재벌은 이런 쪽으론 좀처럼 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급한 것은 따로 있다. 의료법을 개정하고, 환자와 기계, 의사를 둘러싼 사회적 배치를 돈 벌기 유용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때마침 메르스 사태가 법 개정의 명분이 될 만하다. 사망자와 확진자, 격리수용자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와중에 정부 여당에서 원격진료 합법화 문제부터 꺼낸 것은 같은 셈법이었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의료산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쟁력을 따져야 할 것이다. 민간병원에 기대할 사회적 책임에 한계가 있을수록 공공병원들이 공공의료시스템을 지키는 마지노선 역할을 해야 하지만, 공공병원의 비중이 10%를 밑도는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평균과 비교하더라도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다. 메르스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학조사관과 공중보건의 양성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환자를 위해 일해야 할 사람의 자리는 없애고 허황한 사업만 늘어놓은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다. 메르스는 재벌에게만 대박의 계시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니다. 평범한 생활인들에게도 돈밖에 모르는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통신비 의료비 부담 더 커질 것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디지털 헬스케어가 건강관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꽤 알려졌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고 모바일 인터넷 접속이 상시화되면서 개인이 24시간 내내 벌이는 행동과 신체 상태의 변화를 자동으로 측정, 기록하고 분석하는 일은 한결 쉬워졌다. 사물인터넷 센서는 섬세한 생활 관리가 필요한 영유아와 고혈압, 당뇨 환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흡연율과 고위험 음주율을 줄이는 노력에도 도움을 줄 수 있고, 독거노인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생애사가 사물인터넷의 그물망에서 벌어지는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는 통신 요금 체제가 확대 적용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오늘날 통신사의 요금 체제는 이용자가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을 배급하는 사업이 되었다. 이용자가 접속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금액이 많든 적든 통신사에서 제시하는 요금제를 택하고 매 순간 과금이 이뤄지는 체제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돈을 쓰고 있다는 어떠한 자각도 없는 상태에서도 계좌에서 빠져나갈 금액은 카운팅된다. 더 많은 장치를 네트워크에 연결할수록 우리 삶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인클로저가 촘촘히 내리꽂히게 될 것이다. 모든 일상의 디지털화, 사물인터넷 등으로 불리는 정보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센서와 인터넷 연결을 통해 더욱더 철저히 시공간을 자본화할 것이다.
인간의 몸도 예외가 아니다. DNA 시퀀싱, 스마트폰과 모바일 디지털 기기들, 내장형 무선 나노 센서, 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 소셜 네트워크 등이 융합되는 인간의 몸은, 전자화된 화폐의 그물망을 묶는 가장 유능한 매개자이자 새로운 미디어들을 엮는 허브 역할을 계속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인간은 새로운 소비 습관에 익숙해져야 한다. 심장, 위, 폐, 십이지장, 대장, 소장, 췌장 등이 건강한 몸의 상태를 의미하는 숫자에 머물러 있도록 돈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앞엔 정녕 이런 미래밖에 없는 걸까? 가난한 사람들과 정보 소외 계층을 위한 공공병원 확충은 어째서 의료의 미래일 수 없는 걸까? 지역 사회에서 이웃들과 더불어 살며 건강을 보살펴줄 수 있는 의사를 어떻게 하면 지켜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뻔뻔하게 외면하면서 디지털만이 대세라고 외치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더듬거리며 아픈 몸을 설명하는 촌로의 목소리에 다정하게 귀 기울이는 의료 문화를 지켜야 한다. 옹졸한 경제 논리에 환자도 의사도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는 의료 생태계를 가꿔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메르스로부터 환자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의료진 여러분에게 뜨거운 박수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임태훈·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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