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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의학 보다 감염내과에만 의존 '메르스 구멍'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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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의학 보다 감염내과에만 의존 '메르스 구멍' 키웠다

입력
2015.06.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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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조사 소홀로 확산 차단 실패

삼성병원 자체 조사만 믿고

893명만 한정 격리 치명적 실수

당국도 "첫 단추 잘못" 시인 기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집중관리병원으로 지정됐다가 26일 코호트 격리(병동 폐쇄)가 해제된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박창일(왼쪽) 의료원장이 격리 병동 근무 간호사들을 격려하며 안아 주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집중관리병원으로 지정됐다가 26일 코호트 격리(병동 폐쇄)가 해제된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박창일(왼쪽) 의료원장이 격리 병동 근무 간호사들을 격려하며 안아 주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밤9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관 3명을 삼성서울병원에 급파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인 14번(35ㆍ퇴원) 환자가 이틀 전부터 응급실에 입원한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후였다. 14번은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68)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입원해 있었으나 초기 격리대상에서 제외 됐었다. 역학조사팀은 3일에 걸쳐 역학조사를 벌인 뒤 14번에 노출된 사람을 893명으로 한정해 격리조치 했다. 당시 역학조사팀은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의 입원실에만 주목, 메르스가 병동 전체로 퍼진 사실을 놓친 터였다. 그랬던 역학조사팀이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응급실만을 대상으로, 그것도 일부 접촉자만을 격리시키는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결국 삼성서울병원 발 격리자는 당초의 10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병원은 부분 폐쇄됐다.

이처럼 당국의 반복되는 메르스 차단 실패를 놓고 예방의학 전문가들이 예방의학 홀대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역학조사는 예방의학에 속하는데, 당국이 이 분야 전문가들을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도 “예방의학이 아닌 감염내과 분야 전문가들 의견이 주요 결정에 영향을 준 게 사실이며,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감염내과는 실은 감염 예방이 아니라 감염 환자 대응을 담당하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역학조사를 진두지휘 해야 할 예방의학, 감염역학 전문가들은 제외돼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진 ‘메르스 즉각대응팀’에도 예방의학 전문가들은 빠져 있어, 이들은 개인자격으로 대응팀을 돕고 있을 뿐이다. 이마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삼성서울병원 내 역학조사 과정이다. 병원 측에 따르면, 3명의 역학조사관이 14번에게 노출된 이들 명단을 요청해 우선 30일 의무기록,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분석한 190여명을 넘겼고, 이달 1일 환자 675명, 의료진(직원 포함) 218명 등 모두 893명 명단을 제출했다. 역학조사팀이 자체조사를 하지 않고 병원 측에 의존해 제한된 역학조사만 전개한 것이다. 김동현 한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역학조사의 기본을 망각한 일이 왜 발생했는지 궁금하고 개탄스럽다”고 했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초등학교에서 5,6명의 식중독 환자가 발생해도 역학조사를 하면 3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 한다”면서 “역학조사팀이 병원 자체 조사에 의존해 노출환자를 893명으로 한정한 것은 의문”이라고 했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조사팀이 병원에 의존해 역학조사를 했다면 역학조사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누가 이런 잘못된 결정을 내렸는지 특별위원회라도 구성해 조사해야 한다”고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역학조사는 책상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관 동국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대규모 감염사태 경험이 없는 조사팀이 893명이란 소리에 속된 말로 ‘멘붕’이 왔을 것”이라며 “우왕좌왕하다 환자보호자, 방문객 등 추가 노출자를 뒤늦게 인지했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에서는 “삼성서울병원 병원장이 감염내과 권위자라 믿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예방의학 전문의들에게 일을 맡길 걸 잘못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국의 역학조사 실수는 76번(75ㆍ사망) 환자가 거친 건국대병원에서 다시 반복됐다. 역시 응급실과 일부 병동만을 대상으로 격리조치를 하다가 병원이 부분폐쇄 되는 제2의 삼성서울병원 사태였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는 건국대병원에서 잘 대처했을 거라 판단했다”며 실책을 인정했다. 김동현 교수는 “결과적으로 방역당국이 자신들이 해야 할 책무를 전가해 발생한 참사”라고 지적했다. 다른 예방의학과 교수들도 “남 탓을 할 때가 아니라 부실한 컨트롤타워를 정비하는 것이 방역당국이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m@hankookilbo.com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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