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자전거 출근 루트는 서울 양천구 오목교~안양천길~양평사거리~양화대교 남단~한강자전거도로~여의도 전경련 회관~마포대교~공덕역~서부지검~충정로역~서울역 인근 한국일보 사옥(지도 참조)까지 11.2㎞였다. 지하철로 출근하면 1시간이면 충분할 거리다. 자전거를 이용하려면 자전거도로와 차로를 배합하기에 2㎞ 늘어난 13㎞정도다. 지도검색 프로그램에선 52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오래 걸려도 1시간30분이면 출근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출발 시간은 교통혼잡 시간이 좀 지난 10일 오전 9시로 잡았다. 안전모, 고글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눈에 띄는 형광색 복장을 했다. 인도에선 자전거를 타지 않고 최대한 법규를 준수하도록 했다.
차도에선 목숨 내놓고 페달 밟아야
출발지는 집 근처인 양천구 오목교역 사거리. 영등포 방향 도로는 왕복 3차로였는데 가장자리가 점선의 버스전용차로라 주행이 가능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이륜자동차로 분류되기에 가장자리 우측으로 붙어 통행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지식은 도로에서 통하지 않았고 출발한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버스가 기자가 탄 자전거와 10㎝도 안되게 바싹 붙어 지나갔다. 분명 위협운전이었다. 속도를 붙이려는데 자전거가 옆에 있으니 성가셨을 것이다. 핸들이 흔들려 차선 중앙 쪽으로 좀 들어설 때 뒤에 오던 버스는 경적을 울리며 밀어붙였다. 택시기사는 지나면서 “왜 자전거가 도로를 다니냐”며 쏘아붙였다. 자동차 매연은 신경 쓸 틈도 없었다. 불과 300m를 달리는데 전쟁을 치르는 듯 했다. 국내 자전거 사망 인구(10만명당 0.6명ㆍ최근 3년 평균)가 OECD국가 평균(0.4명)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게 다 이유가 있지 싶었다.
오목교를 지나 안양천 자전거도로를 타기 위해 관악고 방향 이면도로에 들어서니 기다리던 자전거도로가 나타났다. 자전거를 보호하기 위해 도로와 구분 짓는 경계석까지 놓여있었다. 하지만 페달을 밟은 지 1분도 되지 않아 자전거도로는 설명도 없이 사라졌다. 눈 앞에는 일방통행 차로만 남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린 뒤 200m남짓 구간을 인도로 걸어 신정교에 도착했다. 교량 계단에는 가장자리에 자전거 올라갈 수 있도록 30cm폭으로 경사면이 조성돼 있었다.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보행자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도로
드디어 출발한 지 20분만에 안양천변 자전거도로에 들어섰다. 공기가 달랐다. 자전거가 두 대도 다닐 정도로 폭 넓게 조성돼 최적의 조건이었다. 평일 아침 출근시간도 지나 한산하기까지 했다. 여의도에서 취재원을 10시30분에 만나기로 해 서둘러야 했다. 안전할 것만 같았던 이 곳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출발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앞서 가던 자전거와 보행자가 충돌할 뻔한 위험천만한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옆에 보행로가 있는데도 자전거도로에서 달리기를 하는 보행자 때문이었다. 안양천 자전거도로는 보행자도 통행이 가능한 겸용이다. 서울지역 724.6㎞ 자전거 도로 가운데 전용은 9.5%(68.9㎞)밖에 안돼 늘 보행자와의 충돌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자전거 과속이 큰 문제다. 강변 자전거도로에서 주행 최고 속도는 시속 20km지만 권장사항일 뿐이다. 특히 자전거의 스포츠카라는 ‘로드 자전거’를 타는 이용자들은 이 속도를 잘 지키지 않는다. 일렬로 가다가 노면이 좋지 않거나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속도제어가 되긴 어렵다. 자전거 사고는 지난해 4,065건(사망 37명·부상 4295명)으로 전년에 비해 25% 증가하는 등 매년 증가추세다.
전체 거리가 늘어지더라도 최대한 강변 자전거도로를 끼는 대신 시내도로는 최소화하는 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양평로 선유중학교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안양천길을 계속 달려 한강 자전거도로 진입했다. 여의도에 도착할 무렵이 돼 진출입로를 알리는 이정표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5분쯤 지나니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여 급작스레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국회 뒤 둔치 주차장 쪽으로 향하니 여의도 윤중로로 들어서는 계단이 보였다. 하지만 계단 중앙에 조성된 경사면에는 ‘경사면 자전거 진입금지’라고 써 있었다. 10kg이 넘는 자전거를 들고 60여개 계단을 오르란 말인가. 다리 근육은 뭉치다 못해 마비까지 오는 느낌이었다.
경찰차까지 자전거도로에 버젓이 주차
그래도 국회가 있는 여의도인 만큼 자전거도로는 잘 다듬어졌을 것이란 기대에 힘을 냈다. 윤중로 가상에는 자전거도로가 차로와 구분하는 안전봉까지 박혀 있었다. 페달을 연신 밟았는데 갑작스레 오토바이가 나타났고 순간 늘어진 벚나무 가지를 피하지 못해 눈 밑을 살짝 긁혔다. 윤중로 주변에 많은 큰 가로수의 가지가 정리돼 있지 않은 탓이다. 그러고 보니 앞에는 이륜차(오토바이) 금지 표지판도 있었다.
국회도 지나지 않아 자전거 도로의 문제가 잇따라 나타났다. KBS 신관 사거리에서 영등포경찰서 방향 우회전 구간에는 차량들이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자전거 도로를 수시로 침범했다. 위험하다 싶어 또 자전거에서 내려 인도로 건널목을 건넜다. KBS앞 윤중로 자전거길로 진입하는 순간 다시 자전거를 멈춰야 했다. 자전거도로를 흰색 차량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름아닌 경찰 순찰차량이다. 경찰차가 자전거도로를 주차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순찰차를 뒤로하고 다시 달리려 하니 이번에는 도로 바닥 하수도 덮개가 문제였다. 자전거도로는 길 가상에 조성되는 경우가 많아 하수도 덮개랑도 자주 만나는데 하수도 구멍이 가로(=)가 아닌 세로로(||) 돼 있어 바퀴가 끼었다. 기자가 타고 간 자전거는 접이식인 ‘미니벨로’종류라 산악용 자전거처럼 바퀴가 두껍지 않다. 이 자전거보다 바퀴가 더 얇은 사이클은 분명 바퀴가 빠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취재원과의 약속장소인 전경련 인근에 이르자 이번에는 버스들이 자전거도로에서 정차행렬을 이뤘고, 다시 인도로 걸어 전경련 앞에 도착하니 택시 10여대가 주인인양 자전거도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고급승용차 운전자에게 주차 이유를 묻자 “회장을 태워야 하는데 어쩌겠느냐”고 했다. 이 곳에 정차하고 있던 택시 기사 강모(51)씨는 “자전거 도로가 아닌 옆 3차선에서 태우다가 지나가던 자전거와 부딪히면 어쩌겠는가. 잘못된 설계다. 탁상행정만 하니 이런 노선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강자전거길은 무법천지… 음주운전 예사
약속장소인 전경련 앞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었지만 만석이다. 이런 대형 건물에 거치대가 1개뿐이라니. 자전거를 접어 노상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취재원과 30분 동안 만난 후 다시 자전거를 폈다. 전경련을 지나 마포대교 방향으로 가니 안전봉이 박힌 자전거도로 구간이 나타났다. 드디어 마포대교를 건너 한강 자전거도로로 진입했다. 마음 편히 페달만 굴리면 된다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 이 곳에서 만난 김성모(43)씨는 “2년째 마포에서 잠실까지 출근하고 있다.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근하는 방법은 최대한 강이 낀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도로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매연이 심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된다”고 조언했다.
한강변을 달리다가 들린 편의점에는 컵라면과 함께 소주를 마시는 자전거족이 있었다. 음주운전 처벌규정은 자동차, 오토바이에 한해 적용되므로 자전거 이용자는 적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일본에선 자전거 음주운전시 5년 이하 징역과 100만엔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는 데 우리 법은 너무 관대하다.
더 이상 페달을 못 밟겠다는 판단이 들어 용산역으로 이동한 후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한강대교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교량 위로 편히 이동했다. “아뿔싸”가 절로 나왔다. 용산역까지 남은 2㎞ 구간에 자전거도로가 개설돼 있지 않다. 또 생생 달리는 승용차 무리와 함께 달려야 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라 인도로 자전거를 끌었다. 건널목에서 만난 미니벨로를 탄 김모(23)군 “인도로 가세요. 사람 별로 없어요. 도로는 위험해요. 사람만 안치면 되죠”라고 조언해줬다. 인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몰상식이라 생각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갔다. 25분 동안 걸어 용산역에 도착했다. 시간은 낮 12시를 넘겼다. 접이식 자전거는 휴대 승차가 가능하다. 맨 끝 칸에 들어섰는데 자전거를 둘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휠체어석에는 자전거를 두지 말라는 안내문까지 걸려 있었다. 선진국에는 지하철, 버스에 거치대가 있는데…. 서울역에 도착해 4번 출구로 나오니 역시나 자전거도로 대신 차로가 등장했다. 회사까지 200여m. 차로를 진입하자 마자 신호가 바뀌었고, 버스 택시 승용차가 금세 밀어붙였다. 바로 인도로 올라와 자전거를 끌었다. 다치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 시계는 12시40분을 가리켰다. 취재원을 만난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3시간 이상 출근길에 허비한 셈이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 있었고, 옷은 땀에 절었다. 이날 최고기온인 35도. 지옥 같은 출근길이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