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중퇴한 20대 미국 청년, 파리서 10대 여종업원과 사랑 빠져
급속히 식는 애정도 날카롭게 묘사, 선정성 논란에 출판사 못 구하기도
19일 국내 언론 몇 곳에 미국 작가 제임스 설터의 부고 기사가 떴다. 대부분의 기사가 그를 ‘한국전쟁 참전 미 소설가’로, 사돈의 팔촌의 친구처럼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그의 낮은 인지도가 한몫 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 설터의 이름 앞엔 ‘잊혀진’ ‘숨겨진’ ‘당신이 몰랐던’ 등의 수식이 (죽기 직전까지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설터에 대한 작가들의 평가를 보면 그를 잊혀진 작가로 둘 수 없다. 수전 손택은 그를 두고 “독서의 강렬한 즐거움을 아는 독자에게 특히 어울리는 작가”라고 말했고, 퓰리처상 수상 작가 줌파 라히리는 설터의 1975년작 ‘가벼운 나날’에 대해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고 고백했다. 리처드 포드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제임스 설터가 오늘날 미국 최고의 문장가라는 사실은 일종의 신념과 같다”는 평가를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참전은 잊고 설터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에 출간된 ‘스포츠와 여가’는 ‘가벼운 나날’ 이전 196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성애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당시로선 꽤나 선정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 한동안 출판사를 찾지 못하다가 ‘파리 리뷰’ 편집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조지 플림턴을 만나 세상 빛을 봤다.
1960년대 프랑스 외곽의 작은 마을 오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가가 과거와 현재, 사실과 상상을 한데 넣고 뒤흔드는 바람에, 소설 속 세계는 추상화처럼 모호해진다. ‘나’가 서술하는 이야기는 현재가 아닌 오래 전 오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고 떠올린 것이며 그 중에는 사실도 있고 상상도 있고 거짓말도 있다. 시공간을 흩트려 가벼워진 세계 위에서 두 남녀의 한때가 칼로 세공한 듯 정교하게 그려진다.
예일대를 중퇴한 스물 넷의 미국 청년 필립 딘은 프랑스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는 열여덟 살짜리 안마리 코스탈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미묘한 계급차와 육체의 이끌림으로 시작된 사랑이 늘 그렇듯 비극은 내정돼 있다. 여자가 결혼에 대해 떠드는 동안 남자는 연애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 사랑은 저 혼자 끝날 준비를 마친다.
연애 초기 두려울 정도로 부풀어오르는 상대방의 매력과 사랑의 한복판을 점유하는 팽팽한 긴장, 그것이 잔인하게 식는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독자로 하여금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필립 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침묵이 부럽다. 왠지 그 침묵은 그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다. 기묘하게 아름다운 침묵이다. 마치 우리에게는 없는 어떤 권리 같다.”
“그녀가 자기 방의 문을 연다. 열쇠가 짤랑거린다. 딘은 신경이 곤두선다. 그는 마치 자객처럼 옷 속에 작은 윤활제 튜브를 감추고 있다_그는 그것이 눈에 띌까 봐 겁에 질려 있다. 그것이 외과용 도구처럼 차갑게 거기 있다.”
“그녀의 귓불에 아주 작게 난 구멍이 마치 낮은 계층의 표시 같다. 그들은 도심을 향해 걷는다. 그녀가 그의 팔짱을 낀다. 그는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납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이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소설이란 장르를 빌려오는 무례를 범하는 것과 달리 설터는 완전한 소설이자 완전한 시가 뭔지 보여주는 듯하다. 이 소설이 출간된 뒤 사실적인 성 묘사 때문에 평단과 독자의 호불호가 엇갈렸다. 작가는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에로티시즘은 이 소설의 중심이고 본질입니다. 그건 분명해요. 로르카의 말을 빌리자면 난 이 소설이 음란하되 순수하고, 어떤 면에선 말로 나타낼 수 없으면서도 억누르기 힘든 것들을 묘사했으면 싶었어요.”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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