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되고 재구성되어야할 개념,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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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고 재구성되어야할 개념,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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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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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속에서 출현한 고유성, 영어로 'Minjoong'

이남희 UCLA 교수, 70~80년대 민중 개념 생성부터

문화운동과 학생운동, 지식인-노동 연대 등 실천영역 훑어

한국사례 통한 개념·이론 형성, 서구중심주의 시각 탈피

1987년 6월 부산에서 한 시위자가 "최루탄을 쏘지 마라'며 경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70~80년대 국가 주도의 근대화에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민중 개념은 우리나라의 고유의 현상으로 정립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어로서 국제적인 지위를 차지한 대표적인 단어가 둘 있다. 하나는 ‘재벌’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이다. 영어로 Chaebol, Minjoong이라고 표기된다. 흥미롭지 않은가. 한국어 중 그 자체로 철자화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두 단어가 재벌과 민중이라니. 이렇게 되는 데에는 언론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 재벌과 민중 ‘현상’에 대한 전세계적인 학문적 저작들의 기여가 컸다.

재벌이라는 개념은 장하준이나 웨이드 등 한국을 발전국가로 정의하는 제도주의 연구자들과 에반스 등 세계체제론자들이 자주 사용하면서 이론적 개념의 반열에 올랐고, 이제는 차머즈의 ‘일본주식회사’에 맞먹는 전세계적 개념이 되었다.

그리고 민중 개념은 최장집이나 구해근 등의 영어 논문들을 통해서 알려졌다. 하지만 민중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고 서술적이며, 재벌에 비해서 덜 알려졌다. 이는 민중 개념이 재벌에 비해 연구결과도 많지 않으며, 개념으로서보다 서술적이고 묘사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학문적 공백을 메우는, 의미 있는 저작이 이남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아시아학과 교수의 저서 ‘민중 만들기: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재현의 정치학’이다.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이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에 대한 연구서다. 정확히 말하면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민중이라는 개념이 생성되는 과정과 그 개념을 실천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뤄진 다양한 운동을 탐색하고 있다.

이 저서는 서구의 역사적 정치적 경험에 연원하고 있는 사회과학 이론과 개념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내부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출현한 고유성으로서 민중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서구중심주의를 탈피하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의미다.

'민중 만들기' 이남희 지음. 유리ㆍ이경희 옮김. 후마니타스 발행ㆍ524쪽ㆍ2만5,000원

이는 최근 학계 일각에서 재점화된 해묵은 주제, 즉 한국 학계의 서구중심적 시각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를 둘러싼 질문에 대해서도 시사적이다. 나는 한국 사회과학이 서구중심적 시각을 탈피하려면, 학계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보다 이른바 한국 사례에 대한 훌륭한 연구를 쌓아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고 본다. 즉 한국 사례를 통해서 개념과 이론을 형성하고, 기존의 서구중심적 사회과학에 대화를 청하고, 나아가 그 이론의 보편을 확장하는 연구와 실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학문적 실천으로서 의미가 있고, 또한 바로 그 기준에 의해 비판받을 만하다.

이 책의 주제목은 ‘민중 만들기(the Making of Minjoong)’다. 하지만 이로부터 70년대 이후 실체적으로 존재했던 사회운동으로서의 민중운동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그 내부의 분화와 전화에 대한 역사기술 혹은 이론화를 기대했다면 이는 발견할 수 없다. 저자는 연구의 목적을 지식인과 대학생들이 어떻게 민중 개념을 발견하고 전유하여 정식화하고, 어떤 정치문화적인 활동을 통해서 민중 개념을 역사적 저항주체로 형성해갔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한정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실천적인 프로젝트를 ‘민중 프로젝트’라고 명명하고 ‘민중운동’이라는 말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하지만 그 양자를 혼용하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70,80년대 저항적인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 운동권이라는 대항적 공론장을 구성하여 국가 주도의 근대화에 저항했다. 대항적 정치문화를 실천하고 저항적 주체로서 민중담론을 구성했다. 민중 주체는 이른바 운동권이 한국전쟁 이후 전태일의 분신과 광주항쟁 등 ‘저항적 기억’의 구성과정과 역사쓰기를 통해서 재발견한 개념이며, 그 형성을 가로막는 제 세력에 대한 끝없는 타자화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구성태다. 민중운동 자체가 정치, 문화, 상징적인 제 세력들의 필드 내에서 “담론적 투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필자는 세 가지 실천영역 즉 ▲마당극 등 문화운동 ▲학생운동 ▲지식인-노동 연대의 양상을 시대적으로 훑으면서 민중 프로젝트의 실천과정을 꼼꼼히 드러내고 있다. 당대의 다양한 문화담론 생산물들, 팜플렛, 공소장, 회고록, 활동가의 수기 등과 2차 문헌 등을 이용한 문화사적인 접근을 통해서 70~80년대 운동권에 대한 세부적이고 풍부한 묘사를 담은 역사화에 성공했다.

사실 민중운동사가 이젠 아득한 먼 과거로 치부되는 지금 이 책의 의미는 적지 않다. 더구나 전세계적으로 학문적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개념이 바로 민중이 아닌가. 거시담론이 사라지고 미시적인 개인들간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운위되는 지금, 저항적 집합주체로서의 민중 개념을 다시 소환하고 복원할 필요가 점증하고 있다. 서구에서 나온 개념인 집단지성이나 다중이라는 말도 쓰는데, 한국의 고유한 집단성을 반영하는 민중이란 개념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 민중 개념은 만들어지는 주체로서의 ‘민중 프로젝트’와 지식인에 의한 ‘재현의 정치학’을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역사였다. 민주화과정에서 민중은 계급으로 분화되었고, 시민으로 대체되었다. 민중 개념은 그렇게 구성과 해체의 양 과정을 망라하는 충돌적이고 복합적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기층계급운동과 사회적 소수자들을 망라하는 연합주체로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 그 긴장은 70,80년대 ‘민중 프로젝트’에 이미 탑재돼 있다.

권영숙ㆍ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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