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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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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입력
2015.06.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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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4년 때 쌀밥 생전 첫 구경

고교 중퇴 후 대구行… 공장 취업

검정고시… 대학ㆍ대학원까지 졸업

시력문제 실직 후 공무원 도전

28년만에 고향 청송으로 금의환향

“어린 시절 절망만 가득 안고 떠났던 고향입니다. 2012년 중년의 나이에 농업기술센터 직원으로 돌아오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청송군 농업기술센터 주무관 민철기(45)씨는 ‘희망 전도사’로 통한다. 청송에서도 가장 외진 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고향을 떠났지만,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 다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민 씨는 “27년 만에 고향이 돌아온 것도 그렇지만 농촌지도기관에서 배운 농업기술을 고향 청송에서 농민들에게 기술보급 하는 역할을 맡아서 더 뿌듯하다”며 “지금까지 받은 도움 그 이상으로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유년시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초등 4학년까지 쌀밥 구경을 못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북 청송군 부남면 구천동에서 5㎞ 더 들어가야 나오는 ‘등골’이라는 산골이었다. 봄에는 보리와 조로, 나머지 계절은 감자와 옥수수가 주식이었다. 초등 2학년 때 부친이 숨지며 더 어려워졌다. “가난 때문에 변변히 약 한 첩 제대로 못 쓰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고 1때 2년 연속 흉년이 들면서 먹고 살기 위해 대구로 향했다. 1985년 가을이었다. 하루 종일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단칸방에 둥지를 틀었다. 직물공장에 취직했다. 힘들었지만 다시 펜을 잡았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8년 6월의 일이었다.

금속ㆍ주물관련 기능사 자격을 따고 금형공장에 취업했지만 시력 때문에 몇 달 만에 그만뒀다. 한 동안 술에 절어 지내며 늘 아파서 누워있던 아버지, 허리를 다치고도 일을 쉴 수 없었던 어머니, 자퇴서를 내고 떠나오던 날 보았던 친구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우연히 본 공무원 전문 학원에 등록했다. 넉 달 만에 합격했다. 제대로 농촌지도사업을 하려면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방통대 92학번이다. 입학 후 그 해 8월 발령이 났다.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했다.

경북 농업진흥원과 시ㆍ군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 등을 옮겨 다니느라 2000년 2월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이어 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석사 학위를 따고 나니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대학 졸업장도 남의 나라 이야기였는데, 석사까지 따다니요. 지난날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죠.”

2013년 가을, 28년 만에 고향 청송에 부임했다. 떠날 때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아내와 1남1녀의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쌀 구경도 못하고 자란 고향에 쌀 전문가가 되어 돌아온 감회가 남달랐다”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만큼 그의 마음에는 오직 고향을 더 잘 사는 곳으로 만들고 싶은 일념뿐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어려운 성장기를 거쳤던 만큼 소외계층 청소년을 돕는 일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다. 학비와 생활비가 없어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민철기씨. 그는 청소년들에게 재능기부를 통한 강연 등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도 시간이 되면 보이기 마련입니다.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제 삶이 작은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광원 엠플러스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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