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사태땐 소통 부재로 혼란"
“정부의 ‘소통 부족’이 메르스 사태를 키운 주범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주(州) 간호사노동조합 위원장인 린다 스트라우드의 말이다. 2015 서울 세계간호사대회 참석차 방한한 그는 25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와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 주관으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정보 독점’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초기대응에 실패한 원인으로 규정했다. 보건당국은 지난달 말 메르스 발병 이후 확진 환자가 거친 병원 명단을 뒤늦게 공개해 사태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린다 위원장은 “전염병이 돌 때 정부는 어떤 병원에서 무슨 질병이 발생했는지 초기에 정확하게 알려야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린다 위원장의 단언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다. 캐나다도 당시 정부와 의료진, 국민 간 소통 부재로 국가적 혼란을 겪었다. 그는 “캐나다에도 사스가 유입돼 환자가 발생했지만 정부는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었고, 환자 동선과 의심병원을 알 수 없었던 국민은 모든 병원과 의사들을 사스 보균자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캐나다 의료진의 사스 감염률은 현재 한국의 메르스 감염 추세와 꼭 닮았다. 자신이 일하는 병원이 의심병원인 줄 몰랐던 탓에 토론토 병원 밀집 지역의 파트타임 간호사들이 병원을 옮겨 다니며 사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2003년 캐나다 사스 감염자 438명 가운데 의료진 감염자는 11%(40명)에 달했다.
사스 대응에서 철저히 실패를 맛 본 캐나다는 이후 정부가 모든 정보를 한 곳에 모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감염병 의심 환자가 검진 받을 수 있는 병원, 확진 판정 시 치료 받을 수 있는 병원 등 대응체계를 매뉴얼로 만들었다. 이런 정부의 투명한 보건정책은 지난해 에볼라 사태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8월 나이지리아에서 캐나다로 귀국한 한 남성이 고열 등 에볼라 증세를 보이자 격리한 뒤 즉각 언론에 알렸다. 12월 한 간호사가 아프리카에서 귀국했을 때도 곧바로 격리해 음성 판정을 받을 때까지 상황을 실시간 언론에 공개했다. 린다 위원장은 “의사 간호사 과학자 정부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둘러앉은 논의 테이블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들어 국민에게 믿음을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물론 공공의료 비중이 99%에 이르는 캐나다와 10%대에 불과한 우리의 의료 현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캐나다에서는 일자리나 연금 이슈보다 의료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공공의제로 다뤄진다. 그러나 정보 공유 및 민관 협력은 의료 수준과 관계없이 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방어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우리의 방역체계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린다 위원장은 “메르스 예방을 위해선 가장 위험한 공간인 병원을 통제하는 일이 관건인데 놀라울 정도로 정부와 의료 관계자 사이의 협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정진후 의원은 “공공의료 시스템이 빈약한 한국은 별도의 감염성 질병 관리 체계를 보다 촘촘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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