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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영상·느림의 미학… 인간미 담긴 예능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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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영상·느림의 미학… 인간미 담긴 예능 개척자

입력
2015.06.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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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앞세운 '꽃보다' 시리즈 대박… 요리 중심 삼시세끼 예능 대세로

일상서 사람 사는 이야기 모으고 제작팀 논의 거쳐 프로그램으로

KBS 떠난 지 2년 만에 일군 성과… "여행 주제로 10여년…" 우려도

“한국일보 기사를 보고 의아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영향력이나 인지도가 있다면 모를까 방송 전반에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영화 방송 가요계의 101명 설문조사에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영향력 큰 인물 3위로 꼽힌 것에 대해 나영석(40) CJ E&M PD는 이렇게 말했지만 이 설문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기존의 예능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그만의 성격이 뚜렷한 프로그램들을 내놓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방송 트렌드가 됐다. 방송뿐만 아니라 대중의 라이프 스타일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가 확실히 장악해버린 그 트렌드란, 일상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에 바탕을 둔 ‘슬로 예능’이다. tvN ‘꽃보다 할배’는 시니어도 예능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고, tvN ‘삼시세끼’로는 ‘쿡방’의 열풍을 주도했다. 또 여행과 요리를 통해 세대 간 소통의 장을 마련했으며, 나아가 아름다운 늙음, 빠름을 접은 느림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방송에 느림의 미학 들인 주인공

권미경 CJ E&M 영화부문 상무는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느림의 미학’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했고, 김경남 쇼타임미디어그룹 PD는 “국내 예능을 진일보시켜 ‘슬로 TV’ ‘슬로 예능’을 선보여 성공한 최초의 PD”라고 나 PD를 평가했다. ‘해피투게더 3’의 모은설 작가는 “경박하지 않은 예능으로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어찌 보면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여행과 요리라는, 새로울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을 섬세하게 미시적으로 들여다 본 것이다. 나 PD는 “이우정 작가 등 우리 팀과의 대화 속에서 언제나 일상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템으로 발전한다는 것. ‘꽃보다 할배’도 ‘삼시세끼’도 이렇게 탄생했다. “여행을 꼭 젊은 애들만 가야 해?” “여행가면 뭘 먹지?” 여행을 기반으로 가지를 이어가는 생각들이 결국 프로그램으로 결실을 맺은 셈이다.

나 PD가 구현하고자 하는 세상은 “소박한 사람 사는 이야기”다. 영화와 드라마를 주름잡았었고 이제는 노인이 된 이순재 박근형 신구 백일섭, 40대 중년의 멋을 보여준 이서진과 차승원 유해진 김광규 등은 이제 바로 건넛집에 사는 우리 이웃 같다. 여행 가방을 싸면서 ‘약’(소주)은 꼭 챙기는 신구와 백일섭, 후배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무조건 직진’이 된 이순재, 읍내에 가고 싶어 옥택연의 핑계를 대며 툴툴대는 이서진. 보잘것없는 일상이 예능으로 타올라 TV 화면 가득 웃음을 채운다. 대단한 사건도 없고 극적인 갈등도 없다. 나 PD가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스타들, 그리고 밍키(개)나 잭슨(염소) 등 동물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나 PD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이연 작가는 “그는 보통을 특별함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이는 애초에 나 PD가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과 관련이 깊다. 연예인 중에는 그를 무한신뢰하는 이들이 많다. 이서진 최지우 김하늘 강호동 이승기 윤여정 등 내로라 하는 정상급 스타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출연을 결정해 버린다. 나 PD는 서슴없이 “우린 패밀리”라고 말한다. 정덕균 제이와이드컴퍼니 대표는 “나 PD가 성별과 연령을 뛰어 넘어 사랑을 받는 데에는 사람을 늘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인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민숙 CJ E&M 작가도 “평범한 일상을 스토리로 만들어 내는 능력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세심한 인간성이 바탕이 된다”고 답했다.

일상을 따뜻하게 들여다보기

나 PD의 솔직한 접근은 일상을 영위하는 수많은 이들의 감성을 건드렸다.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 ‘삼시세끼’등은 시청률 10%(이하 닐슨코리아)를 오르내리며 시청자를 열광시켰고 지상파 방송을 위협했다. ‘꽃보다’ 시리즈의 인기는 KBS2 ‘엄마가 있는 풍경 마마도’(2013?시청률 3~4%),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2015?시청률 2~3%) 등의 모태가 됐다. ‘삼시세끼’의 성공은 ‘쿡방’의 열풍을 일으켜 지상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줄줄이 요리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직접 농사를 지어 식재료를 얻는 KBS2 ‘인간의조건-도시농부(2015?시청률 3~4%)까지 나왔다. 차승원이 빵 만드는 장면이 나온 ‘삼시세끼’ 어촌편 5회는 14.2%의, tvN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런 콘텐츠의 힘은 곧바로 CJ E&M의 강점으로 부상했다. CJ E&M은 지난 17일 종가 기준으로 7만4,900원을 기록해 2010년 상장한 이후 최고가를 찍었다. 최찬석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CJ E&M은 하나의 프로그램 시리즈가 성공해 차기 시리즈의 광고단가가 오르고 그로 인해 주가가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 PD가 방송계의 트렌드 세터가 된 것은 12년 간 몸담았던 KBS를 떠나 CJ E&M으로 이적한 지 불과 2년 만의 성과다. 그가 있기까지는 KBS2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산장미팅 장미의 전쟁’(2002)과 ‘해피선데이-1박2일’을 함께 한 이명한 tvN 본부장을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1박2일’을 연출했던 이 본부장은 조연출이던 나 PD에게 메인 PD 자리를 물려주고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감각 있는 친구예요. 시골(충북 청주) 출신이라 전국을 여행하는 ‘1박2일’의 특징을 더 잘 살릴 겁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웃음, 감동을 잘 안다니까요.” ‘1박2일’은 ‘나영석 전성시대’를 열었고 2010년 39.3%라는 역대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아는 것에서 이뤄낸 성공은 그러나 그의 한계이기도 하다. 여행이라는 제한된 주제에 머물고 있는 그가 얼마나 오래 트렌드가 될지는 모른다. 임기홍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은 “여행이라는 주제로 10여년을 했기에 시청자의 충성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도 “나 PD의 건재함은 무시할 수 없지만 비슷한 레퍼토리를 반복한다는 건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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