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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촌로의 컴퓨터

입력
2015.06.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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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저 길을 따라 마을 청년 몇이 끌려갔지. 누구, 누구, 누구하여 여섯이었어. 그리고는 네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지. 영영. 나? 나는 이 산에 숨어 있었어. 어머니 먹을 것 나르시느라 엄청 고생 하셨지.” 6ㆍ25를 맞아 당시 오지였던 이 마을에도 전쟁의 비극이 있었을까? 하여 무심코 던진 질문에 어르신은 담담히 말했다. “아…. 그럼 그 얘기도 적으세요. 그 분들 이름도 적고 생각나는 모든 것들 다 적어 남기세요. 지금 어르신 아니면 누가 기록하겠어요? 끌고 간 산사람 얘기도 빼놓지 마시고요.”

충청도 진천 태령산 자락 한 작은 마을과 반농반도(半農半都)의 인연 맺은 지 10여년이 지났다. 피상적인 고정관념으로 이 곳 삶을 이해하던 초기, 나는 주변분들 모두를 농부로, 그 삶을 단조로운 농사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의 능력자였으며 삶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특별히 어르신은 80여세의 촌로에 대한 나의 통념을 여지없이 뒤엎은, 다방면의 능력과 잠재력을 지닌 분이었다. 소싯적 영남 땅에서 이곳 상여소리로 그들의 소리를 꺾었음을 자랑하는 그는 회심곡, 소모는 소리 등 여러 노랫가락을 구수하게 뽑는 가객이며 지역 사진전에 초대되는 향토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한때는 꿈을 따라 무작정 상경을 감행한 배우 지망생이었으며, 낙향한 후 시대를 앞선 토마토 농사와 양어 사업으로 좌절도 맛본 영농후계자이기도 했다. 늘 벗어나기를 원했지만 운명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이 마을과 가난. 그의 인생 역정과 더불어 당신의 뛰어난 기억력과 지적 호기심, 경쟁심, 응용력은 나를 자극했다.

초기 나의 생활신조는 ‘무조건 묻는다’였다. 아니 물을 수밖에 없었다. 모르고, 신기하고 또 알아야 했기에…. 그러나 묻기만 하는 생활은 자칫 나를 나약한,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이게 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당신이 필요 할 것 같은 것을 알려드리자’였고, 그 답은 컴퓨터 워드 작업이었다. 영재 촌로께서는 얼마 되지 않아 문서 편집은 물론 사진도 자유로이 넣었으며 왕성한 호기심으로 정보 검색도 빨리 익히셨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나의 역할은 쓸 것에 대한 자문 정도이어서, 당신의 인생과 경험, 지혜, 심지어 마을의 대소사에 대해서도 기록할 것을 권했다. 결국은 자서전 혹은 회고록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처음에는 멋쩍어 거절하셨지만 마을 역사의 기록도 나라의 사기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 세월의 중앙에 서서 당신 생각으로 세상을 논하는 것이 주는 웅대함으로 설득했다. 아마도 이장 시절의 여러 소회를 맘껏 기술할 수 있다는 점도 주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컴퓨터에는 당신의 빛 바랜 과거지사가 차곡차곡 옮겨가기 시작하여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한 시사와 전동공구 등에 관심이 많은 어르신을 위해서는 인터넷이 해법이었다. 그런데 영어가 가장 큰 장애로 등장했다. 자판을 비롯한 많은 용어가 한글이 아니어서 애를 먹었지만 당신은 모양과 위치 정보로 이를 해결, 지금은 인터넷 신문과 방송, 유튜브도 애용하신다. 한때는 인터넷 거래 사이트를 통해 시장 조사를 한 후 읍내 상점에 가서 “왜 옛날 물건만 있냐? 가격은 왜 이리 높냐?”는 등 시장 교란을 은근 즐기기도 했다. 눈치 볼 것 없이 모르거나 궁금한 것은 즉각 검색했으며 그리하여 얻은 정보들로 무장한 그는 더 이상 작은 산골 노인이 아니었다. 읍내 그 세대 사이에 오피니언 리더로 등극한 당신에게 인터넷은 다정한 스승이며 친구였다. 그의 자서전도 나날이 검색을 통해 더 정확해졌다. 심지어 저 마을 앞길에 버스가 처음 들어온 날짜, 어린 시절 떠나온 강원도 평강군 세포면 삼방약수터 사진까지도 실렸다. 국어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글이지만 어긋난 철자법, 문법이 가난 속에 고달팠던 삶을 더욱 진솔하게 증언하는 가운데 그의 기록은 한 작은 마을의 유일한 서지로 기억될 것이다.

황성호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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