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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봄이] 레이싱,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입력
2015.06.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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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0~21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복귀전을 펼쳤습니다. 지난해 11월 영암 서킷에서 큰 부상을 당한 이후 약 7개월만의 서킷 복귀였는데요.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탓인 지 이 때의 떨림은 여느 때와는 달랐습니다.

대회 전 레이서들은 수많은 준비를 합니다. 백 번 강조해도 부족함 없는 ‘안전’때문입니다. 저 역시 예선을 사흘 앞둔 17일 인제에 도착해 연습 주행 등을 통해 레이스 코스를 살폈고, 선배들과 함께 서킷을 걸으며 노면 상태까지 살핍니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이전 대회나 연습 주행 시 차량에 장착해 촬영했던 ‘인캠’을 돌려보며 다시 한 번 코스를 분석합니다. 레이스 준비는 잠자리에서도 이어집니다. 눈 감기 직전까지 레코드라인(서킷 내의 최단거리 코스)을 그려보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한 번 더 서킷을 달려보지요.

대회 전날의 긴장감은 상당합니다. 우선 차량에 이상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안전장비도 다시 한 번 살핍니다.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부분은 대회 당일의 날씨입니다. 날씨에 따라 타이어도 전략도 달라지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 대회 예선 당일인 20일엔 엄청난 폭우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인제 서킷을 한 번도 달려보지 않은 저로서는 엄청난 부담을 느꼈죠.

레이서들은 예선전부터 치열한 승부욕을 불태웁니다. 예선 성적에 따라 결승레이스 때 좋은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저 역시 예선을 잘 치러 좋은 위치에서 출발하고 싶었지만, 날씨부터 도와주질 않았네요. 특히 지난해 부상을 안겨준 큰 사고를 당했던 마지막 경기 때의 날씨와 비슷해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됐습니다.

하지만 팀을 믿었습니다. 미케닉(정비 담당)은 서스펜션(노면의 충격이 차체나 탑승자에게 전달되지 않게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이나 스태빌라이저(자동차의 차체가 좌우로 기우는 것을 줄이기 위해 장착하는 자세 안정장치)를 조금 더 소프트하게 교체하는 등 차량 세팅을 우천시 최적화 할 수 있게 적용했고, 타이어 역시 레인타이어로 교체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합니다. 예선 도중 갑자기 비가 멈춘 건데요. 약 25분의 예선 레이스에서 겪기 힘든 일이라 다소 당황했지만, 경기 도중 슬릭타이어(마른 노면용)로 과감히 교체했습니다. 감독의 빠른 판단, 미케닉의 손놀림 등 팀 호흡은 성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예선 결과는 19대 중 10위.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레이서로서 굉장히 큰 경험을 얻은 예선전이었습니다.

하루 뒤인 21일 열린 결승. 예선과는 다르게 화창한 날씨 속에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차량 세팅에도 큰 변화는 없었죠.

결승은 서킷 38바퀴, 총 거리로 환산하면 약 100km를 달려야 하는 힘겨운 레이스입니다.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고, 초반부터 차량간의 몸싸움으로 서킷을 벗어나는 차량, 엔진에 문제가 생겨 기권하는 차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한 차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20바퀴를 지날 때쯤, 후미 차량과의 자리싸움 중 컨트롤 능력을 잃고 스핀을 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차량의 시동이 꺼졌는데, 다시 켜니 시동이 걸리지가 않았죠. 엔진이 지나치게 뜨거울 때 시동이 안 걸릴 수 있다는 점이 떠올랐습니다. 차분히 몇 차례 시동을 걸어보니 다행히 시동이 걸려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피했습니다. 당시의 엔진 온도는 121도. 뜨거운 노면의 온도와 더해져 정신은 혼미해졌고, 부상 당했던 목의 통증도 상당했지만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남은 18바퀴를 정신력으로 내달리며 결국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성적은 11위. 결과만으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경기였지만, 부상 이후 고통을 참아냈던 시간을 되짚어보니 완주라는 결과의 가치는 크게 다가왔습니다. 예선 때 경험한 빗속의 레이스, 결승에서 경험한 또 한 차례의 위기 탈출을 통해 또 한 걸은 성장할 수 있었던 대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레이싱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함께이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선 의미 있는 복귀전이었습니다.

여성카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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