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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언 허스트·키스 해링… 천안터미널 내리면 '언제나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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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언 허스트·키스 해링… 천안터미널 내리면 '언제나 비엔날레'

입력
2015.06.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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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수집가 김창일 회장

버스터미널을 갤러리 등과 묶어 89년부터 예술의 광장으로 조성

작품 140여점 1000억 호가, 쇼핑과 여가 즐기며 감상

獨잡지 '꼭 가 봐야 할 곳' 선정, 김 회장 "더 많은 예술공간 만들고파"

세계적인 미술작품들이 충남 천안의 버스터미널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헌 놋그릇으로 버섯구름을 형상화한 작품(큰 사진 왼쪽)은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이고 바로 옆 소녀상은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 천안=신상순기자 ssshin@hankookilbo.com
세계적인 미술작품들이 충남 천안의 버스터미널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헌 놋그릇으로 버섯구름을 형상화한 작품(큰 사진 왼쪽)은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이고 바로 옆 소녀상은 데미안 허스트의 ‘채러티’. 천안=신상순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방의 버스터미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페인트 벗겨진 낡은 콘크리트 건물에 빛 바랜 터미널 간판, 매캐한 매연 냄새와, 엔진 소리가 뒤섞인 웅웅 거리는 소음, 세차장에서 흘러나왔는지 항상 질퍽한 승차장 등이다. 그렇게 허름하고 어수선한 공간에서 우린 어디론가 훌쩍 떠났던, 혹은 누군가를 아쉬움 속에 떠나 보낸 기억을 품고 있다.

하지만 충남 천안시 신부동의 천안종합터미널은 다르다. 아니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일의 저명한 예술잡지 ‘Art’ 가 ‘한국에 들르면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꼽은 버스터미널이다.

버스에서 내려 출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거대 야외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예술공간이 펼쳐진다. 터미널을 중심으로 조각광장, 쇼핑몰과 갤러리로 이루어진 ‘아라리오 스몰시티(Small City)’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술 광장이다.

아라리오 스몰시티는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야우리시네마,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종합터미널, 대형마트, 대형서점, 식당가 등으로 이뤄진 7만6,000㎡ 규모의 공간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차축 999개를 기둥 모양으로 쌓아 올린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
차축 999개를 기둥 모양으로 쌓아 올린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

이 드넓은 공간 전역에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조각광장을 비롯, 백화점, 영화관, 식당가 등에는 국내외 유명 작가 40여명의 작품 140여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데 이들 작품의 전체 가격이 1,000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데미안 허스트, 아르망 페르난데스, 키스 해링 등 이름만으로 가슴을 들뜨게 하는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이곳 천안의 버스터미널을 예술로 빛나게 하고 있다. 쇼핑을 하거나 차표를 사는 순간에도 국내외 유명작가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세계적인 작품들에 둘러싸여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광장에 예술이 깃들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프랑스 작가 아르망 페르난데스(Arman Fernandez)의 작품‘수백만 마일)’이 설치되면서부터다. 999개의 폐 차축을 쌓아 올려 만든 이 작품은 ‘완성’을 의미하는 1,000에서 하나가 모자람으로써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2000년과 2002년 각각 설치된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Hymm)’와 ‘채러티(Charity)’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작품의 가격은 각각 1,000만달러를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빨간 가방 모양을 한 씨킴의 ‘Image 2’.
빨간 가방 모양을 한 씨킴의 ‘Image 2’.

키스 해링의 작품 ‘줄리아(Julia)’,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Line of Control)’ 또한 그냥 지나쳐선 안 되는 작품들이다. 특히 2013년 설치된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는 높이 15m, 무게 약 27톤, 설치에서부터 제작까지 총 3년, 설치비 50억원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공공예술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 아라리오 광장을 예술로 빚은 이는 세계적인 수집가인 김창일(64) ㈜아라리오 회장이다. 미국의 유명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7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는 김 회장은 늘 예술에 대한 갈증과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김 회장은 작가 씨킴(CI KIM)으로도 불린다. 35년 전 처음 현대미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그가 지금까지 소장한 작품은 3,700여 점에 이른다.

그는 “평생 잡기를 모르고 살아 왔기에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연구 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며 “그러다 보니 사업과 컬렉션, 작업에 몰두했고 세월이 흘러 많은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보다 해외미술계에서 더 알아주는 그는 1989년 현재의 신부동으로 이전한 천안고속터미널을 백화점, 갤러리 등과 묶은 ‘아라리오 스몰시티’로 조성했다.

2002년 천안을 시작으로 2005년 중국 베이징, 2006년 서울, 2007년 뉴욕 첼시에 갤러리를 오픈했다. 제주에서는 영화관, 모텔, 바이크샵 등을 개조한 4곳의 뮤지엄을 개관했다. 또한 경매로 나온 공간사옥을 사들인 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열어 예술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12일에는 중국 상하이 갤러리를 재 오픈 했다.

그는 2002년 천안 아라리오 재개관전인 키스 해링을 시작으로 해외 현대미술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에 집중했다.

데미언 허스트와의 만남은 아라리오 컬렉션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는 데미언 허스트의 거대한 조각을 사들여 이를 천안의 조각광장에 설치해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측면에서 본 아라리오 갤러리 지붕
측면에서 본 아라리오 갤러리 지붕

1998년 이후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YBA)들의 작품과 독일 라이프치히 화파를 주목하고 집중적으로 수집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는 중국과 인도, 동남아, 구 동독의 신진작가들 작품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왕성한 작품수집에 대해 미술계 주류들은 ‘예술을 모르는 졸부’ ‘싹쓸이 컬렉터’라며 깎아 내리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아냥에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았다. 그리곤 그 작품들을 혼자만의 것으로 가두지 않고 시민들에게 내놓고 함께 공유토록 했다. 멀게만 생각해온 현대미술을 거창한 미술관이 아닌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공원, 백화점에서 쉽게 보고,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훗날 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미술품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을 품고 있다.

김 회장은 “고헤이 나와의 최신 조각이며 데미안 허스트, 키스 해링의 조각을 보기 위해 해외에서 천안을 찾는 이들이 꽤 늘고 있다”며 “맨 처음 조각공원을 만들 당시 돈키호테 보듯 했던 시선들이 있었는데, 훗날 이들 조각을 대중에게 선물한 내 결정을 높이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부터 기업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전업작가로 나선 그는 오늘 9월 제주에서 개인전을 연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빠져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그는 더 많은 예술공간을 더 만들고 싶어한다.

그는 “예술을 접목한 이후 사업은 더욱 번창했고, 그 번창의 열매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며 “사람과 자연이 돋보이는 공간을 지방에 더 많이 만들어 생각하는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천안=이준호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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