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함태수] 2011년 초 얘기다. 한대화 감독 체제의 한화가 적극적으로 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었다. 워낙 선수층이 얇아 즉시전력감, 유망주를 가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당시 한화는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SK와도 카드를 맞춰 봤다. SK는 전년도 우승 팀이었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곧장 없던 얘기가 됐다. 한화로선 절대 내줄 수 없는 투수를 SK 쪽에서 요구한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콕 집은 선수는 윤규진(31ㆍ한화)이었다. 강속구를 보유한, 그러나 당시에는 미완성이라는 평가를 받은 오른손 투수에게 김 감독은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4년 뒤 둘은 운명적으로 한 팀에서 만났다. 어느덧 프로 13년 차가 된 윤규진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으로 막 성장한 뒤였다. 어깨 부상을 완벽히 털고 위력적인 구위로 돌아온 윤규진을 지난주 대전구장에서 만났다. 그는 "야구를 하며 지금 밸런스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어깨 부상으로 고생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떤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몸 컨디션이 완벽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어깨 통증 당시에는 공 던지는 자체가 문제였다. 팔꿈치는 아파 봐서 언제쯤 괜찮아지겠다는 감이 있는데, 어깨는 처음이라 많이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통증이 있다면 이렇게 못 던지고 있을 거다."
-일각에서는 포크볼 빈도가 줄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일부러 포크볼을 안 던지는 건 없다. 그냥 포수 사인대로, 리드대로 던지고 있다. 필요할 땐 포수가 포크볼 사인을 내고 있으니 그건 아니다."
-평소 직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데.
"직구를 자신 있게 던져야 다른 변화구도 먹힌다. 신인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공 스피드에는 그리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다. 타자들의 방망이가 늦게 나오는지, 배트가 밀리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투수에겐 스피드보다 '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감이 중요한 것 같다."
-배트가 밀린다는 건 결국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건데, 타자들은 투수들의 투구폼 얘기를 많이 하더라.(윤규진은 아주 천천히 다리를 들어올리면서도 팔 스윙은 빨라 타자들이 타격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 그런가? 앞으로 더 느리게 던져야겠다. 타자들이 헷갈려 한다면 당연히 더 느리게 다리를 올려야겠다.(웃음) 사실 고등학교 때는 평범한 폼이었다. 남들과 다른 게 없었다. 그러다가 김인식 감독님이 (한화에) 계실 때 김수경(전 넥센) 선배처럼 팔을 한 번 내려도 보고 이후에도 은근히 폼 변화가 심했다. 지금의 밸런스는 올 캠프 때 만들었다. 감독님과 투수 코치님이 옆에서 많이 봐주셨다. 지난해와 비교해 아주 큰 변화는 없지만, 이렇게 좋은 밸런스는 야구 하면서 처음인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작년 시즌만 해도 이렇게까지 느린 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캠프에서 더 잡아 놓고(하체에 힘을 모으고) 던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팔 동작, 스텝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조언을 받았다. 조금씩 보완을 해주신 것이다. 공도 많이 던졌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시범경기 때도 상당한 개수를 소화했다."
-그러면서 찾아온 변화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제구력이다. 작년에도 제구력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올해는 더 만족스러운 것 같다. 많이 던졌으니깐 밸런스가 잡힌 것 같고 그에 따른 자신감도 따라왔다. 시즌 전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시범경기나 시즌 초반에는 포크볼 떨어지는 각을 보고 나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부상이 있었지만 여전히 1점대 평균자책점(24일 현재 1.78, 1승1패 8세이브)을 유지하고 있다.
"직구 스피드에 연연하지 않듯 성적도 숫자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점수야 줄 때가 있고 안줄 때가 있다. 안타도 맞고 홈런도 맞을 것 아닌가. 자꾸 기록을 생각하면 경기하는 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내 성적을 찾아보지 않고 주위에서 간혹 평균자책점을 얘기해줘야 그 때 안다."
-타석에 섰을 때 얘기도 해보자. 고등학교 때 잘 쳤다는 제보가 있는데.(윤규진은 지난 12일과 14일 LG전에서 한 차례씩 타자로 나서 모두 삼진을 당했다)
"누가 그러는가. 절대 아니다. 아, 고등학교(대전고) 2학년 때 포철공고와의 연습경기에서 당시 3학년이던 권혁(한화) 형을 상대로 홈런을 친 적은 있다. 전국체전에서도 진흥고 조용원 형에게 홈런 때린 기억도 있다. 하지만 20번 타석에 들어가면 18번은 삼진, 홈런은 2번 나올까 말까였다. 투수하길 잘했다."
-그러고 보니 한화 입단한 게 2003년이다. 정민철 해설위원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내가 신인 때 현역으로 뛰고 계셨고, 은퇴 전까지 룸메이트를 했다. 옆에서 야구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지금도 야구장에서 만나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본인도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겠다는 건가.
"사실 후배들이 어떻게 던지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아직 부끄럽다. 내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몇 년 동안 좋은 기록을 낸 투수도 아니고 같이 배워가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아니다. 좀 더 잘 한 다음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 생각이다."
-끝으로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그렇게 크지 않다. 부상 없이 올 시즌 끝까지 가는 것이다. 또 하나 마운드에서는 포수 사인대로 그곳에 전력 투구를 하는 것. 딱 두 가지다."
사진=한화 윤규진.
함태수 기자 hts7@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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