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로 다시 가라앉은 경제
국제적 악재들도 잠복한 위험 상황
경제체질 일신할 전환기적 대책 필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의 경기침체에 빠져든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여력 있는 노인들이 돈을 쓰지 않은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본의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미리 상속도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벌이가 있으면 저축을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를 꺼려 돈이 돌지 않으면서 경기 침체가 장기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도 저축률이 오른다는 통계가 반갑지 않다. 올해 1분기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에서 소비하지 않고 남은 소득의 비율인 총저축률이 36.5%로 집계됐다. 1998년 3분기(37.2%)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다. 정부나 기업에 비해 가계 저축률이 앞선다. 소득증가율이 둔화하고 미래를 어둡게 진단하면서 저축은 늘어나는 반면, 가계의 소비는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환위기나 카드대란, 세월호 참사 등 경제적 충격기에는 총저축률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번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주범이다. 메르스 사태로 경제가 멈췄다는 느낌이다. 재계에서는 메르스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대한상의는 “최근 한국 경제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미끄러워 경사면을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대한상의는 어제 ‘3대 부문 10대 경제정책과제 제언문’을 발표하면서 메르스 불황을 차단하고 경기 정상화를 위한 역량 집중을 정부에 주문했다.
사실 메르스와는 별개로 우리 경제에는 악재들이 잠복해 있다. 메르스 사태로 수면 아래에 잠겨있었을 뿐이다. 올해 들어 수출은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신흥국 경기부진과 석유류 수출가격 하락 등으로 수출감소세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수입은 더욱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경상수지 흑자폭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반갑지 않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2011년 이후 5년째 분기별 성장률이 평균 0.7%에 그치고 소비자물가가 3년째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5~3.5%)를 하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이 둔화하고 물가가 오르지 않는 저성장ㆍ저물가 국면이 고착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전세가격 폭등에 따른 주택구입 활성화로 가계부채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다시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외부 환경도 만만치 않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경제는 메르스 외에도 그리스 채무협상, 미국 금리인상 등 각종 리스크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경제 환경이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부도 글로벌 수요회복 지연, 주력 제조업 경쟁력 약화, 엔화ㆍ유로화 약세로 인해 수출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가계부채 증가는 내수회복에 제약요인이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가 5분기 이상 0%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데다 미국의 금리인상 등의 통화정책 변화는 우리 금융ㆍ외환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어쩌면 우리 경제에 위기가 일상화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는다. 굳이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가 아니더라도 이미 외부환경의 충격에 극히 취약한 경제구조가 돼있다. 우리 수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이 올해는 물론 내년 이후에도 7%이내의 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의 주력 제품인 휴대폰과 자동차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세계교역량도 둔화되는 추세다.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정치권의 주문대로‘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과제를 발표한다. 충분한 재정보강과 확장적 거시정책을 통해 메르스 사태의 충격을 극복하겠다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로는 충분치 않다. 메르스 불황 극복 차원을 넘어 일상화한 저성장 국면을 탈피할 수 있는 전환기적 정책이 절박한 시점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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