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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천막병원서 통증 치료, 고마움 이제서야 전합니다"

입력
2015.06.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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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중ㆍ고 늦깎이 학생 1400명

참전 16개국에 정성 담은 손편지

상당수가 전후 학업 중단 아픔

"처음 본 외국 군인 무서웠지만

치료해 준 은혜 평생 못 잊어"

6ㆍ25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진형중ㆍ고등학교에서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만학도들이 유엔연합군으로 참전했던 16개국의 국가수반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6ㆍ25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진형중ㆍ고등학교에서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만학도들이 유엔연합군으로 참전했던 16개국의 국가수반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미군들이 세운 임시 천막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났지. 얼마나 고맙던지, 평생 잊을 수가 있나. 그 고마운 마음을 이제서야 전달하게 됐구먼.”

6ㆍ25전쟁 당시 부산 범일동에 살고 있었던 최숙년(79) 할머니는 처음엔 전쟁보다 부산항으로 몰려든 유엔연합군이 더 무서웠다고 했다. 열 네 살의 소녀에게 처음 본 외국인은 흡사 저승사자를 연상시켰다. “피부는 하얗거나 까맣지, 눈은 동굴처럼 깊지, 코는 얼마나 큰지… 그런 사람을 봤어야 말이지. 전쟁통에 사람들이 많이 죽는단 얘긴 들었거든.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나 보단 생각에 외국 군인만 보면 숨기 바빴지.”

그러던 최 할머니에게 유엔군은 어느새 평생 고마움의 대상으로 변했다. 최 할머니는 전쟁 기간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전쟁 통에 부산에 변변한 병원 한 곳 없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찾아간 곳이 미군 임시 병원이었다. 한국인들의 치료를 위해 군용 천막을 쳐 임시로 마련한 미군 병원에서 최 할머니는 가슴에 차있는 고름을 한 가득 빼내고서야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최 할머니는 60여 년이 지나서야 그 같은 고마운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최 할머니 등 서울 종로구 숭인동 진형중ㆍ고등학교의 늦깎이 학생 1,400명이 24일 한국전쟁 65주년을 맞아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 국가 수반들에게 감사의 손편지를 꾹꾹 눌러썼다.

진형중ㆍ고교와 (사)손편지운동본부는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이 발전될 수 있는 밑거름 역할을 해준 한국전쟁 참전국에게 고마운 마음을 직접 전달하자는 취지에서 이날의 편지 쓰기 행사를 마련했다. 진형중ㆍ고 재학생 대부분은 50~80대 연령인 늦깎이 학생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전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가 뒤늦게 만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

김현민(70) 할아버지도 이날 그리스 참전 용사들을 대신해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그리스 대통령 앞으로 감사의 편지를 썼다. 김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으로 작은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었다. 만삭의 부인을 둔 채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간 작은아버지는 철원 금화지구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 할아버지의 부친 역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했다. 둘 뿐인 자식이 모두 전쟁터로 나가 작은 아들이 전사하자 김 할아버지의 조부는 그 충격에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숙부의 유해는 아직도 가족들 품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6ㆍ25로 인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나 우리 가족에게는 아직도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면서 “이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차배현 진형중ㆍ고 교장은 “나이가 많은 재학생들은 일제 강점기와 6ㆍ25 등 우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살아왔다”면서 “그분들이 6ㆍ25 당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우방국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또 그 과정에서 지난 날의 역사와 이웃 나라들에 대해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진형중ㆍ고 늦깎이 학생들이 눌러쓴 1,400통의 편지는 국가보훈처와 외교부를 거쳐 16개국 대사관을 통해 각 국가 수반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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