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청와대에서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거부권) 절차를 밟을 것인지 여부 때문이다. 국무회의를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격주로 주재하는 관행에 비추어 대통령이 주재하는 오늘 회의가 결단을 내려야 할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어제까지의 청와대 기류에 비추어 국회법 개정안을 보는 박 대통령의 시각은 거의 변화가 없는 듯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가 어렵사리 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ㆍ변경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었지만 헌법이 보장한 정부의 행정입법권과 대법원의 명령ㆍ규칙 심사권을 국회가 침해할 가능성 등 근본적 위헌 소지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주된 언급이었다. 여당인 새누리당 안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로 환부될 경우에 대비한 대응책이 다각도로 논의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불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도 여러 차례 지적했듯, 얼마든지 위헌 소지를 짚을 수 있다. 헌법수호 책무를 가진 대통령으로서 그런 법안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단선적인 시각이다. 비록 개정안의 한 글자를 바꾸는 데 불과했지만, 수정ㆍ변경 요구의 ‘강제성’을 완화하려는 정 의장과 여야 지도부의 정치적 타협 절차를 감안하면, ‘강제성’에 대한 우려는 내려놓아도 된다. 정부의 뜻과 배치되는 국회의 수정ㆍ변경 요구가 불가능하다는 여당의 정치현실적 설명에 덧붙여, ‘강제성’에 집착했던 야당조차 이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마당이다. 더욱이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무는 어디까지나 헌법을 지키라는 뜻이다. 어떤 법률의 위헌 소지자체가 헌법을 흔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발상이야말로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 심사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법률의 위헌 소지는 나중에 구체적 문제가 빚어졌을 때 따져도 된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그 자체가 새로운 국가적 위기가 된다. 메르스 사태 대응과 경제 활성화 대책에 집중해야 할 국가ㆍ사회 역량을 흩뜨릴 게 뻔하다. 겨우 봉합된 당ㆍ청 갈등과 여당 내 계파 갈등을 재연시킬 것은 물론이고, 야당의 반발로 전면적 여야 대치 정국이 빚어지게 마련이다. 사무총장 임명을 둘러싼 내홍으로 보아 야당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 격해서 임시국회는 물론 정기국회에도 거센 여파를 미칠 것이다.
우리는 최근 박 대통령이 일본의 뚜렷한 자세 변화가 없는데도 화해의 손을 내민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외교와 마찬가지로 내정에서도 상대의 허물까지 감싸 안을 수 있는 금도(襟度)는 값지다. 오늘 국무회의에서 그런 결단을 한번 더 빛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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