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나 왜 울지?” MBC ‘일밤-복면가왕’에서 두 번이나 가왕을 차지한 그룹 에프엑스 멤버 루나는 “좋은 노래 들려줘 고마웠다”는 심사위원의 말에 눈물을 쏟았다. 가면을 벗은 루나는 “(이 무대에서는)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주목받을 기회가 많은 아이돌이 6주 동안이나 얼굴을 가린 채 노래를 하고 “후회 없이 노래 불렀다”며 울다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복면가왕’은 웃음 뒤에 가요계 ‘기획형 아이돌’의 그림자를 내비친다. 노래 실력을 인정 받아 기획사에 발탁되고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획사가 그룹의 색깔과 앨범의 콘셉트를 정하고, 여기에 조립하듯 가수를 끼워 맞추다 보니 노래가 ‘대박’이 나도 가수들에겐 ‘내 노래’로 남지 않는다.
원더걸스 ‘텔미’(2007) 등 한때 ‘국민노래’로 불리던 아이돌의 곡들을 떠올리며 선예와 선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댄스곡 위주로 활동하며 곡의 일부를 나눠맡는 그룹 멤버들은 제 음색이나 가창실력을 부각시키기 어렵다. 아이돌 음악을 두고 ‘공장에서 찍어냈다’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돌 멤버 중에도 노래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큰 이들이 적지 않아 이런 가수들이 ‘특별 무대’에서 숨통을 튼다. 가면을 쓴 루나는 에프엑스에서 보여주지 못한 풍부하고 깊은 음색을 들려주며 얼굴보다 제 목소리를 알리는 데 의미를 뒀다. 에이핑크 정은지, EXID 솔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노래가 아닌 남의 히트곡을 편곡해 부르는 KBS2 ‘불후의 명곡’에 아이돌이 몰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불후의 명곡’을 총괄하는 권재영 PD는 “아이돌그룹 멤버들의 출연 의지가 매우 높다. 또 저만의 목소리와 무대를 보여주겠다며 편곡 작업에 적극 아이디어를 내고 고민하는 모습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박원우 ‘복면가왕’작가는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고자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이 가수가 왜?’라고 할 정도로 인지도 있는 아이돌 멤버가 출연 제의를 먼저 해 와 놀랐다”고 말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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