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이내 결제 의무화 법안, 3년 계류 끝 내일 법사위 소위 상정
도매상들 대금 받는데 최대 19개월… 4년간 70여곳 자금난으로 도산
제약사들 피해도 年 1000억 추정, 냉가슴 앓는 업계 법안 통과 호소
최근 제약업계의 눈길이 온통 국회에 쏠려 있다. 의약품을 구매하고 최대 1년 7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대금을 지급하는 대형 종합병원들의 ‘갑질’ 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23일 제약업계와 의약품도매업계에 따르면 의약품 대금 결제 기한을 6개월 이내로 의무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은 약사법 일부 개정안이 25일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에 상정된다. 지난 2012년 11월 오제세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뒤 계속 계류돼 온 이 법안이 이번 회의에서 통과되면 법사위 전체회의, 국회 본회의를 거쳐 정식 법제화 된다.
의약품 도매업계는 “대형 병원들의 늑장 결제로 2011년 이후 70여개 도매상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며 법안 통과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제약업계 역시 “병원의 의약품 지급 지연으로 제약사들이 입는 피해가 해마다 약 1,000억원에 이른다”며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한국의약품도매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도매상이 국내 33개 주요 종합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한 뒤부터 대금을 지급받는 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7.3개월이다. 한양대병원은 무려 19개월이 지나서야 약값을 지급했고, 인제대 서울백병원과 경희대병원은 각각 14개월, 12개월이 걸렸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이 가장 빨리 지급했는데 이마저도 3개월이 소요됐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진원지로 비판을 받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은 5개월 뒤에나 약값을 지급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특히 병원 내에서 처방돼 환자들에게 쓰이는 원내사용 의약품 매출 비중이 약국에서 팔리는 원외처방 의약품에 비해 높은 제약사나 도매업체의 추가 도산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다. 황치엽 의약품도매협회장은 “이런 관행 때문에 도매상이나 제약사들은 약을 공급해놓고도 제때 돈을 받지 못해 경영 악화에 시달렸다” 고 토로했다.
병원에 의약품을 공급하지 못하면 생존이 어려운 도매상이나 제약사는 대형 병원에 대해 명백한 ‘을’이다. 그만큼 의약품 대금 늑장 결제는 보건의료계의 대표적인 갑을 관행으로 꼽힌다.
더구나 도매상들은 병원으로부터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아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때문에 하청업체에는 60일 이내에 대금을 결제해줘야 한다. 따라서 도매상들이 어쩔 수 없이 대출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제약사 역시 병원에 약품을 공급하지 못하게 될까 봐 병원이 일방적으로 대금 지급을 늦춰도 울며 겨자먹기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발의 당시 이 법안은 의약품 대금을 3개월 안에 의무 결제하고, 기한을 넘기면 최대 연 40% 이자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항들은 병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대로라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병원들이 오히려 도산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도매업계와 제약업계는 “병원들은 환자들에게 쓴 약값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 15~40일 안에 받는데, 이를 의약품 공급사에 전달하지 않고 운영자금으로 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실제로 업계에선 “의약품 대금 지급을 몇 개월 연기하면 이자 수입 등을 합쳐 병원 인건비 정도 빠진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병원과 도매상 간의 사적(私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건보공단을 통해 세금이 일부 들어가는 의약품 대금을 100% 사적 거래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보건당국의 중재 등을 거쳐 의약품 대금지급 기일 의무화 법안은 급여의약품(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약)은 건보공단에서 약값을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 비급여의약품은 의료기관이나 약국 개설자가 의약품을 수령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대금을 지급하고 기한을 넘기면 최대 연 20% 이자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완화돼 법사위 제2소위에 상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오 의원은 “오랜 기간 논의를 진행해 왔고 공정거래를 도입하자는 취지인 만큼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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