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취임 후 냉랭한 모드
日 뚜렷한 변화 없는데 입장 선회
아베, 도쿄 행사서 과거사 함구
한국만 '미래 강조' 안달 난 모양새
세계유산 등재만 어설픈 봉합
“이제 잔치는 끝났다. 곧 계산서가 나올 텐데 우리가 과연 제대로 이익을 냈을까. 일본은 느긋한 모습인데 우리만 너무 서두르고 제대로 실리를 못 챙긴 느낌이다. 청와대의 외교 기조도 조금은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한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지난 2년 4개월 한일 외교전을 이렇게 평가했다. 양국 정상의 기념식 교차 참석으로 한일관계는 해빙기에 접어들었지만 청와대와 외교부의 대일 외교전략에서 아쉬운 대목이 적잖다는 이야기다. 실제 서울 외교가에서는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과 주도권 상실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일외교 강경 고수하다 급선회 혼란
현 정부 들어 외교부의 최대 난제는 일본이었다. 박 대통령이 2013년 취임 후 첫 3ㆍ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밝힌 뒤 대일 강경론은 정부의 핵심 기조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도 박 대통령이 계속 관심을 보이면서 한일정상회담의 전제조건처럼 얘기돼왔다. 정부의 대일 강경론은 세월호 참사 후 정윤회 관련 보도를 했던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검찰 기소에서도 확인된다. 연초 들어 한일관계 개선 목소리가 높았을 때도 청와대는 이를 일축해왔다.
그러다 4월 가토 지국장 출국정지를 특별한 사유 없이 해제하고, 한일 장관급 회담을 재개하면서 한일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유흥수 주일대사의 20일 인터뷰를 기점으로 위안부 관련 정상회담 입장도 유연해지는 등 대일 강경 기조가 두 달 새 급반전했다는 지적도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3일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한일관계에 뚜렷한 반전 상황이 아닌데도 관계개선이라는 입장표명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할 거라면 왜 몇 년 간 일본을 상대로 그렇게 어려운 외교를 했느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日 결정에 끌려 다니고 실익도 못 챙겨
청와대가 우왕좌왕 서두른 기색도 역력하다.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최근 들어 “50주년 행사에 박 대통령 참석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해왔다. 대통령까지 움직일 정도로 한일관계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아베 총리가 일본 의회 안보법제 공방 때문에 22일 도쿄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박 대통령도 20일까지는 불참 입장이 확고했다. 하지만 21일 아베 총리가 입장을 바꿔 참석키로 하자 이날 저녁 늦게 청와대는 다시 참석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측 결정에 끌려 다닌 셈이다.
게다가 22일 행사에서 아베 총리는 한일 과거사는 한 마디도 다루지 않고, 오히려 2차대전 전범이었던 외조부 기시 전 총리를 언급하는 등 발언이 기대 수준에 못 미쳤다. 반면 박 대통령은 한일관계 미래를 강조하는 바람에 한국만 한일관계 개선에 안달이 난 모양새가 됐다.
외교적 실리 측면에서도 얻은 게 없다. 21일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거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외교부가 지난 3개월 총력전을 펼쳐왔던 일본 강제노동시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저지 문제도 어설프게 봉합되고 있다. 정부의 초기 대응 잘못으로 일본에 밀리다 겨우 ‘강제징용’을 명기하는 선에서 타협안을 만든 정도인데 성과로 포장되는 분위기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일본에게 ‘너희가 움직여서 와라’ 해놓고 결국 우리가 움직였으니, 전략적으로 우리의 실익이 없다”고 평가했다.
정상원기자 ornot@hankookilbo.com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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