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문단이 좋아하는 형식 탈피, 다양한 시도할 수 있는 풍토 절실
작품방향까지 결정하는 美·日처럼 편집자 역량·책임 강화
대중이 원하는 작품 나오게 해야… 일각에선 문단 평가 시스템에 반기
출판인들은 이번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 논쟁이 ‘국내 문학출판계 현실에서 한번은 터졌어야 할 시한폭탄’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형적인 문단 풍토를 쇄신할 절호의 기회라는 평가도 있다. 작가, 출판인들은 비평 기능을 살리는 한편 “독자를 바탕으로 소설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단 말고 독자를 봐라
한 출판사 편집자 A씨는 “신경숙처럼 잘 팔리는 작가가 10명만 돼도 출판사가 그렇게 절절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시장을 받쳐주는 대중작가가 많아야 역설적으로 순소설도 산다”고 말했다. 한국소설이 시장에서 자생력이 있어야 작가들을 감싸고 돌거나 모시기에 급급하지 않고 생산적인 비평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며, 작가 생태계가 다양해져야 궁극적으로 인기 작가부터 노벨상을 받을 작가까지 배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우리 문단에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다양한 통로가 부족하다. 출판사 편집자 B씨는 “주요 문학출판사는 투고 원고를 평가하고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기획위원을 두고 있는데, 대부분 (문단 어르신으로 통하는) 평론가와 중진 작가들이 맡는다. 또 신인이 투고하면 신인상에 응모하라며 아예 보지도 않는다”며 “획일화된 신인 등용문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작가, 독자와 보다 가까이 호흡하는 편집자의 역량과 책임을 키울 필요가 있다. 작가의 작품 방향까지 함께 결정하는 미국, 일본 편집자와 달리 한국의 편집자는 작가 원고를 사후에 편집하는 수준에 그친다. 한 소설가는 “프로 작가는 ‘이런 글을 쓰면 이런 독자가 좋아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대중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는 문단 어르신들을 독자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글이 독자를 향해 가기 위해서 편집자의 조언이 필요하다. 적어도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작가들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순문학주의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을 발표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는데 실제로 기성 문단 평가 시스템에 반해 새로운 담론의 장을 만드는 젊은 작가들의 움직임이 있다. 30일 출판사 은행나무가 내놓는 문예계간지 ‘악스트’는 소설가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을 기획위원으로 위촉해 작가와 번역자가 국내외 소설을 평하고, 신작소설을 발표하는 잡지다. 정용준 작가는 “문예지 종류는 많지만 ‘문학적인 문학’만 다룬다. 고정된 담론을 벗어나 독자들이 쉽게 소설에 관심을 가질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중혁 김연수가 주축이 돼 만든 인터넷 서평 블로그 ‘소설리스트’ 역시 소설가 출판평론가 등이 주축이 돼 소설 리뷰를 쓴다.
문학상 등 제도 정비 필요
작가들의 각성도 필요하다. 편집자 C씨는 “작가들 스스로 자기 글과 글쓰는 방식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문단의 평가와 별개로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된 정유정의 행보는 눈여겨볼만하다. 장편소설 공모제인 2007년 세계청소년문학상과 2009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정씨는 여느 작가들처럼 계간지 지면에 단편을 발표하기를 거부했다. 많은 신인 작가들이 주요 문학출판사 편집위원, 편집자와 친분을 쌓을 때 정씨는 전라도 광주에 내려가 작품에 매달렸다. 이후 ‘7년의 밤’과 ‘28’이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형서점과 영화계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두 공모제 당선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와 ‘내 심장을 쏴라’를 포함, 정씨가 발표한 장편소설 4권의 누적판매는 85만권에 달한다. 정씨는 “문학성이 없다는 비판을 종종 받았다. 내 이야기는 철저히 독자를 향한 대중소설이지만 순문학보다 쉽게 써지는 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문학성 높은 작품을 발굴하는 본연의 역할보다, 자기 식구를 챙기는 통로로 활용되는 문학상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문학상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390개에 달하는데 “문학상의 양적 팽창이 한국 문학의 질을 끌어 올렸는지 반성하라”고 문학평론가 D씨는 주장했다. 심사위원으로 자주 불려가는 원로 평론가는 “문학상 상금을 줄이든지 없애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 판매와 상관 없이 문학상 상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문단에서 자리잡으려는 작가에 대한 일갈이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성숙한 대화 자세가 절실하다. 문학평론가 E씨는 “문학권력으로 비판받는 창비와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에 기여한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일종의 공공 자산으로 역할한 점을 인정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