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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머릿속엔 환자 생각뿐… 두려움도 떨쳐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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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머릿속엔 환자 생각뿐… 두려움도 떨쳐냈죠"

입력
2015.06.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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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장구 착용하자 숨이 턱턱

동료 한명은 폐쇄공포증까지

메르스와 하루 8시간씩 사투 중

"주위의 시선에 직업 숨긴 적도,

환자들 완치 후 퇴원 꼭 보고 싶어"

23일 오후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메르스 격리병동에서 보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4)
23일 오후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메르스 격리병동에서 보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4)

“간호사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제 직업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8층의 감염격리병동에서 만난 간호사 이아람(27ㆍ여)씨. 고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간호사가 된 지 3년째인 이씨가 자신의 직업을 숨기게 될 거란 건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보라매병원에 가자”라고 했을 때 어김없이 돌아오는 택시기사의 “보라매병원 근무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간다”고 얼버무렸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공포를 의식하게 되면서 이씨는 이제 직업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됐다.

지난 5일 처음 메르스 환자를 받은 보라매병원은 10일 메르스 집중 치료기관으로 지정됐다. 3주째에 접어든 23일 현재 최신 음압병상에서 5명의 메르스 확진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측은 여기에 20여명의 간호사를 투입했다. 이들은 8시간씩 3교대로 투입돼 지금도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씨는 “5월 말 메르스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제가 환자를 보게 될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6일 출근해 보니 환자와 의료진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통로가 변경되는 등 병동의 구조가 바뀌어 있었다. 바뀐 병동의 모습에 대한 당황스러움도 잠깐, 보호장구 착용 연습을 하니 긴장감이 고조됐다. 속장갑, 방호복, 덧신을 순서대로 입고 N95마스크를 착용하는 순간 숨이 확 막혔다. 또 고글과 전동식호흡장치(PAPR), 마지막 겉장갑까지 모든 보호장구를 껴입으니 체온과 날숨 때문에 고글 속으로 금방 습기가 차올라 시야가 가려졌다. “아, 메르스가 무서운 거구나” 하는 두려움이 그 때 엄습했다.

속속 환자들이 들이닥치면서 우선 환자부터 잘 보살피자고 마음 먹자 처음의 두려움은 점차 사그라졌다. 이씨와 같은 간호사들은 주기적으로 환자들의 신체 징후를 점검하고 투약 처치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식사를 돕고 씻기는 등의 개인 위생 부분까지 책임진다. 중환자들의 경우 몸을 가누지 못해 욕창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자세도 바꿔 준다.

일상적으로 하던 일이지만 격리병동 내에서는 이 모든 일이 쉽지 않다. 외부 공기와 차단된 보호복 탓에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땀이 줄줄 흘러 탈진증세가 생기기 일쑤다. 산소를 공급하며 계속 웅웅 소리를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PAPR은 시간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진다. 겹으로 낀 장갑 등 보호장구 탓에 움직임은 무뎌지고 속도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환자와 일대일로 마주치는 상황이라 자칫 방심하다간 감당키 어려운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는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도 환자와 접촉한 부분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외부로 바이러스가 유출되지 않게 하려면 보호장구를 벗을 때 이 부분들에 대한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 간호사 한 명은 폐쇄공포증 증상을 보이며 못 버티고 뛰쳐나가기도 했다. 격리병실 바깥으로 나와 잠깐 한숨을 돌리지만 쉴 시간이 많지는 않다.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 입고 계속 다른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로 관찰해야 한다. 수간호사 김정아(45ㆍ여)씨는 “격리병동에 근무한 지 3주로 접어들면서 의료진들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지쳐 간다”고 걱정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이씨가 처음 받은 환자가 치매 증상 때문에 침상을 벗어나려고 한 것. 치매 환자는 주사 바늘을 뽑거나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씨는 “격리병동에 들어가려면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등 시간이 걸려 바로 조치할 수 없는데 다행히 큰 일 없이 끝났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처럼 힘겹게 메르스와 사투를 하고 있지만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는 주변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이씨의 아버지도 직장 동료로부터 “출근해도 되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자녀를 둔 동료 의료진은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가 의사인 사람 손 들어”라고 했다는 아이의 말을 전해 듣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심지어 이제 병원으로는 음식배달도 안 된다. 그나마 친절한 분들은 병원 입구까지는 배달해 준다고 한다.

그래도 이씨의 머릿속에는 환자뿐이다. “좀더 환자를 오래 보고 싶은데 보호장구를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그래도 이분들이 완치돼 걸어서 나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저희 의료진에게 우리 이웃들이 힘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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