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면세점 업계에 큰 사건이 벌어졌다. LG생활건강의 한방화장품 브랜드‘더 히스토리 오브 후(后)’가 전국 면세점 7개 점포에서 루이비통과 샤넬까지 누르고 면세 매출 1위에 등극한 것이다. 국산 화장품이 세계 명품 브랜드를 제친 전례가 없다. LG생활건강은 이 덕에 지난해 면세점 매출액 성장률이 전년보다 203%, 올해 1분기엔 무려 300%를 웃도는 호황을 누렸다. 이는 국내 1등 화장품 브랜드인 설화수에서 느껴온 한방 보다 한 단계 더 럭셔리한‘궁중(宮中)’을 테마로 브랜딩 작업을 펼쳐 유커들을 사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 시내에 면세점을 3개 더 늘리면 ‘후’의 판매가 3배 이상 늘어날까. 예컨대 명동을 찾은 유커들이 소공동 롯데 면세점에서 최고급 크림인 ‘후 환유고(68만원)’를 한 개 구입한 후 500m 떨어진 또 다른 면세점에서 이를 하나 더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유커들이 서울에 면세점이 적어 쇼핑을 마음껏 못했다는 불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비행기 탑승 직전 구입한 면세 물건을 받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는 데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는 많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수 진작과 함께 해외 관광객 유치 전략으로 면세점 확대를 꼽았다. 내달 시내 면세점 추가 허가 업체 선정 발표가 예정돼 있다. 사실 시내 면세점이 정부에 내는 수수료율은 전체 매출액의 0.05%로, 1조원의 매출을 올려봐야 고작 5억원을 세금으로 낼 뿐이니 특혜 시비도 일만하다. 가뜩이나 유커들을 태운 버스 행렬로 교통 지옥을 맞아야 하는 서울시민 입장에선 면세점에 대한 감정이 고울 리 없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도 면세점 허가를 얻으면 영업 이익의 10~20% 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제안할 정도다. 기업들이 면세점 허가에 목을 매는 것은 2010년 4조5,000억원이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 8조3,000억원으로 2배 뛰었고, 올해는 1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성과 수익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백화점과 할인점 등 유통업계 전반이 불황에 휘청거리고 있지만 면제점만 호황을 누리고 있어 시내 면세점 낙찰은 로또 당첨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면세점이 수익성을 앞으로도 계속 담보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요커들이 최근 3년같이 물 밀듯 한국을 방문해 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아닐까. 그래서 불안감이 앞선다. 한 달간 전국을 삼켜버린 메르스 사태 속에 텅 빈 면세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명동에 가득했던 유커가 한국에서 언제 등을 돌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한 유명 여행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2020년 중국에서 방한할 유커가 1,700만명에 달 할 것으로 보고 호텔도 짓고 면세점도 늘리며 난리 법석이지만 정작 유커들이 보고 즐기고 맛볼 관광 명소가 없어 다시 한국을 찾게 할 유인책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이 여행업체는 공연과 전시 이벤트 등 각종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사업 다각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국내 면세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신라 면세점이 시내에 또 다시 면세점을 내고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사업적 의욕은 좋다. 그러나 이 보단 수 십 년 된 제주 신라호텔을 한 차원 높고 고급스러운 리조트로 확대 개발해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제주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더 멋진 일은 아닐까. 이는 신라호텔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시내 면세점을 늘리기로 한 목적이 정말 관광객 유치에 맞춰져 있다면 업체 선정 기준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채로운 환경 속에 쇼핑의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해야 할 것이다. 주차설비와 사회공헌 등 환경적 요소도 고려 대상이지만 무엇보다 유커들이 다시 찾고 싶어할 정도로 브랜드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역량 있는 면세점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장학만 산업부 선임기자 trend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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