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자씨, 비정규직 자녀 후원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싶은데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요.”
지난 4월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과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다는 말도 이어졌다. 전화한 이는 김광자(68ㆍ사진) 평화교통 대표였다.
두 달이 흐르고 김 대표가 이사장을 맡은 언지장학회가 설립됐다. 서울시교육청은 24일 교육감실에서 조희연 교육감이 김 이사장에게 장학회 설립허가서를 직접 전달한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장학회에 50여억원을 출연했다. 40여년 모은 재산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장학회 이름은 김 이사장의 호를 땄다. 선비 ‘언(彦)’에 늦을 ‘지(遲)’로 ‘늦게라도 학문적 소양과 인격을 갖춘 선비가 되자’는 뜻이다.
4남 2녀 중 셋째인 김 이사장은 20대이던 1970년대 당시 생소했던 여성 택시기사로 일했다. 운전뿐만 아니라 차량 정비도 맡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줄곧 일에만 매진해 지금은 50여대의 택시를 운영하는 운수회사 대표를 맡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게 운영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다.
김 이사장이 태어난 곳은 경기 용인이지만 평소 서울 중랑구 회사 주변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저소득층을 안쓰럽게 봐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중랑구에서 다른 택시회사들과 힘을 합해 여성 택시기사 양성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김 이사장이었다. 그의 지인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일에는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사석에서는 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며 “열심히 일해준 기사들이 고마워서 뭐가 필요한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평생 모은 재산 거의 전부로 장학재단을 만든 이유도 박봉인 기사들에게 자녀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시작해 중랑구 저소득층 자녀들이 교육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김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도 고사했다. 대신 시교육청을 통해 “중랑구 주변의 열악하게 살아가는 일용직근로자와 단기계약 종사자 자녀들이 희망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언지장학회를 설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언지장학회는 김 이사장의 출연재산을 운용해 매년 장학금 8,000만원을 비정규직 자녀 후원에 쓸 계획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어렵게 모은 재산을 소외학생들을 위해 출연한 데 감사 드린다”며 “언지장학회가 잘 운용돼 어려운 학생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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