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경기도립의료원 수원병원의 음압병실을 취재하러 나선 길. 병원 입구에서 의료진 3명에게 가로막혔다. 방문 목적을 들은 의료진은 손 소독을 시킨 뒤 열 감지 카메라로 체온을 측정하고 마스크부터 씌웠다. 이 병원은 경기지역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중점 치료센터다.
꼼꼼한 방역절차를 끝내고 올라간 6병동 음압병실 앞에선 간호사 4명이 일체형 방호복을 입느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복도 구석에서 마스크, 고글, 장갑, 덧신까지 착용하느라 화장기 없는 간호사들의 얼굴은 벌써부터 지쳐 보였다.
수원병원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입원하기 시작한 건 지난 1일. 이 병원 간호사 95명 가운데 3분의 1인 30여명이 그 뒤로 21일째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수원시내에 별도로 마련된 숙소와 병원을 오가며 하루 3교대로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름 공개를 꺼린 한 간호사는 “의료진 아이들이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야속했다”며 “우리도 메르스가 무섭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결정할 정도로 ‘혈세 먹는 하마’로 눈총을 받던 공공의료원이 메르스 사태 최전방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끌어가고 있다. 경기도립의료원만 하더라도 수원병원 등 산하 6개 병원의 누적 적자가 239억원(지난해 말 기준)에 달한다. 2005년 단일 법인으로 통합된 이래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국회 국정감사와 지방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경영부실을 꼬집는 정치인들의 ‘단골메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요즘엔 메르스 대처의 첨병 역할을 하면서 공공의료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냉정한 경제논리 속에서도 음압병실 설치 등 언제 닥칠지 모를 감염병 대처 준비를 착실히 해온 덕택이다.
경기도립의료원은 메르스 발병 이전부터 이미 전국 공공ㆍ민간병원이 보유한 음압병실 105개 가운데 무려 17%인 18개를 산하 6개 병원에 운영하고 있었다. 음압병실 한곳을 설치하려면 일반병실과 비교해 적게는 600만원에서 1억원 넘게 들지만, 공공의료 기능을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
수원병원은 특히 메르스 사태 이후 2억여원을 긴급 투입해 기존 9개이던 음압병실을 32개로 23개나 늘렸다. 이 때문에 메르스 환자를 15명 더 받을 수 있을 만큼, 병실에 여유가 있는 상태다. 수원병원에는 현재 확진 환자 7명과 검사 진행 중인 환자 7명 등 모두 17명이 격리 치료 중이며 이들의 회복을 위해 의사 29명 등 의료진 120여명이 휴가도 없이 매달리고 있다.
의료진의 노력을 아는 지역주민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인근 아파트단지 주민들의 반발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수원병원 맞은편 울타리 등에는 의료진을 격려하는 초록색과 노란색 리본 수천 개가 매달려 있다.
도립의료원 김형남 기획실장은 “국가적 규모의 감염병 등에 대처하려면 공공의료기능을 확충해야 하고 여기에 드는 경비는 ‘착한 적자’로 봐야 한다”며 “촘촘한 공공의료 서비스로 주민들의 격려에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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