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부가 굴욕ㆍ졸속 협정 체결
日 군국주의 미화해 관계 금 가
기존 협정 폐기하고 재협상해야
위안부ㆍ독도ㆍ신사참배 등 현안
미래 공존까지 발목 잡아선 안돼
고위급 채널 통해 분리 논의를
1964년 한일협정 체결 반대운동을 주도한 ‘6ㆍ3 세대’의 대표격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22일 박근혜정부의 대일 외교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대해 “(정부의) 미숙함이 초래한 실패”라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이날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과거사 해결 노력과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노력은 병행추진돼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등 소아병적인 사고에 갇힌 청와대ㆍ정부의 외교라인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_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군국주의 역사를 미화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의 산물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당연시하면서 한일관계에 결정적으로 금이 갔다. 반일 정서가 강해지면서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국민 감정에 반해서 한일관계를 끌어갈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일협정이 굴욕적ㆍ졸속적으로 이뤄진 데 원인이 있다.”
_한일협정이 50년 한일 갈등의 뿌리라는 뜻인가.
“일례로 당시 협정에서 개인의 배ㆍ보상 문제를 우리 정부가 맡기로 했다. 일본이 ‘당시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는데 무슨 소리냐’고 주장하는 빌미를 준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해도 한일협정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은 지금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었다. 본인들이 원해서 왔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지 않나. 독도 문제도 당시 협상에서 한일 양국이 서로의 주장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 역시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준 셈이다.”
_한일협정 내용에 대한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당시 그토록 체결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개인 청구권 협상만 해도 군사정부가 일본에 요구한 배ㆍ보상 규모는 5억달러다. 그런데 1952년 이승만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요구한 금액은 81억달러다. 5ㆍ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 입장에선 일본의 도움이 절박했겠지만, 당시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ㆍ문인ㆍ성직자 등 지식인들과 대다수 국민들이 ‘제2의 매국’이라고 반대했다.”
_정부가 대일외교의 기조를 한일협정 개정으로 잡아가야 한다고 보나.
“당연하다. 독도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 정부가 ‘조용한 외교’ 운운해왔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건 한일협정 때문이다. 우리 땅이라면서 군인ㆍ경찰 주둔에 반대하는 게 바로 우리 외교부다. 시설물 설치도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실효적 지배’라는 궁색한 변명을 앞세운다. 외교협정은 3년마다 어느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협상이 가능하다. 이제라도 50년이 지난 한일협정을 폐기하고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_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독도 방문이 한일관계를 꼬이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평가는 일본의 논리다. 독도는 우리 땅이니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이런 사고로는 독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일본이 국제분쟁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그냥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대통령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분명히 해주면 일본의 대응이 나오고 일본의 수를 읽어낼 수 있다.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신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_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는데.
“그야말로 소아병적 발상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덮을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 민족이 존재하는 한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된다. 그건 역사이고 진실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정상회담을 못한다는 건 국민 감정에는 딱 맞지만 외교적으로는 하책 중 하책이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갈 일이다. 일본이 전향적으로 우리 얘기를 듣고 우리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_사실 정부와 청와대의 외교전략이 미숙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정치도 그렇지만 외교도 역대 정부 통틀어 가장 실패작이다. 외교는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도약도 중요하다. 미래지향적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그 빈틈을 채워나가고, 또 이만큼 건너뛰고 채워나가는 시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외교는 지금까지 쌓아둔 외교관계가 흐트러질까 전전긍긍하는, 그야말로 공무원적 사고다.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끼리만 우물 안에서 안전하게 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구한말 정세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안전한 외교만 추구하다 보니 국제무대에서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다.”
_미일 ‘신밀월 관계’도 눈여겨봐야 하지 않나.
“실제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입지가 좁아졌다.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박근혜정부 들어 마치 중국과 대단한 혈맹관계라도 맺은 것처럼 하는 외교적 언행이 나오다 보니 미국이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은 립서비스는 항상 한국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북아에서 중국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과 가까워진 것도 아니다. 중국은 오히려 우리가 미국 쪽으로 다시 기우는 것을 이용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그때그때 땜질 식으로 하다 보니 우리 외교의 위상이 애매해졌다. 이대로는 우리나라가 국제 외교무대에서 ‘왕따’가 될 수 있다.”
_한일 정상의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참석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겉으로는 한일관계가 진전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일간의 3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꾸준히 이들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고위급 채널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과감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외교라인의 핵심에 보다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인물들이 기용돼야 한다. 대일관계에선 가끔씩 사고를 쳐도 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너무나 부족하다.”
양정대기자 torch@hankookilbo.com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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