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중음악에서 표절 논란이 많이 줄었다. 반면 특정한 곡을 참조해 분위기나 편곡, 특정 요소를 비슷하게 가져가는 ‘레퍼런싱’이 늘었다. 그렇다면 레퍼런싱은 ‘덜 비슷한 표절’로 봐야 할까.
대중음악의 표절은 검증된 곡을 베껴오기 위한 것이다. 레퍼런싱도 표절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경향은 그 대상이 외국곡에서 국내곡으로 바뀌는 것이다. 요즘 신인 걸그룹들은 2000년대 후반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게서 다양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조합하고 있다.
사실 재즈의 초창기부터 기존의 곡을 직접 인용하는 일은 빈번해 후일 샘플링 기법으로 이어졌다. 이는 특정한 코드 진행이나 프레이즈를 소리의 연속체보다는 하나의 기호 덩어리로 다루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아이돌이 방송에서 ‘귀요미송’ 등 애교스러운 유행어를 할 때, ‘애교’라는 기호로 전달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실연자는 대중이 이 기호의 원본을 알아볼 것이라고 전제하고, 감상자 역시 ‘데이터베이스적 소비’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레퍼런싱은 이 지점에서 표절과 가장 크게 구별된다. 기존의 검증된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창작에 가까운 경우들이 K팝에서 이뤄지고 있다. 유명 걸그룹들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안무를 도입하면서 음악적 색깔의 조화를 꾀하는 CLC, 자신들의 히트곡 ‘위아래’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뮤직비디오를 통해 자기 패러디를 시도하는 EXID의 ‘아 예’ 등이 그 예라 하겠다.
그렇다고 모든 레퍼런싱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특히 소형 기획사의 신인 아이돌의 경우 빅뱅, 소녀시대, 엑소, 인피니트 등의 곡을 참고하는 일이 많다. 원곡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구성, 멜로디, 구체적 가사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외국곡을 몰래 가져오는 것과는 또 다른 맥락이 발생하는데, 대중이 기억하고 있는 이런 곡들은 듣는 이에게 익숙해 각인 효과를 강화한다. 말하자면 원곡이 선행하기에 팔린다. 타인의 노력에 기대 흥행을 노리는 이런 종류의 레퍼런싱은, 표절의 법적 범주를 벗어나면서 표절의 효과는 곱절로 챙긴다.
표절은 종종 소모적 논란으로 귀결된다. 에이핑크가 처음 S.E.S를 참조했을 때 결론은 표절의 기준에 미치지 않으니 표절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이들은 한동안 같은 레퍼런싱을 반복했다. 이후 여자친구가 소녀시대와 에이핑크를 참조했을 때도 논란의 경과는 유사했다. 결국 ‘베끼기 논란’에 대한 대중적 피로감만 가중돼 ‘베껴도 상관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무척 우려되는 점이다.
K팝의 다양한 요소들이 기호로 자리잡아가는 지금, 레퍼런싱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지만 다른 표절과 레퍼런싱에 대해 명확한 구분이 이뤄져야 무분별한 ‘베끼기’를 경계할 수 있다.
미묘ㆍ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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