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인사 비판에 변변한 친선전도 치르지 못했지만 모두 이겨내
등록선수 1천705명(2014년말 현재)에 불과한 한국 여자 축구가 2015년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무대에서 축구 선진국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면서 16강의 성적표를 남긴 것은 분명 기적에 가깝다.
2003년 미국 여자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 본선 진출의 기쁨을 맛봤던 한국 여자 축구는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복귀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만 해도 칭찬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태극낭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별리그 통과를 넘어 16강에 진출해 사상 첫 8강 진출까지 노렸지만 아쉽게 '아트사커' 프랑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16강에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만하다.
태극낭자가 쌓아올린 '월드컵 기적'의 음지에는 윤덕여(54) 감독의 헌신이 숨어 있다.
지난 18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E조 3차전에서 태극낭자들이 2-1 역전승을 거두고 16강 진출하는 순간 윤덕여 감독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연방 흐르는 눈물을 닦는 모습은 팬들에게 감동을 자아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22일 몬트리올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16강전에서 FIFA 랭킹 3위인 '강호' 프랑스를 상대한 태극낭자들은 한 수 위 기량을 이겨내지 못하고 0-3으로 완패했다.
하지만 윤덕여 감독은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난적 프랑스를 상대로 부상 투혼을 발휘한 '맏언니' 골키퍼 김정미(현대제철)를 비롯해 발목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발로 나선 박은선(로시얀카)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린 선수들이 자랑스러웠다.
비록 태극낭자들의 '월드컵 돌풍'은 16강에서 멈췄지만 한국 여자 축구는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를 얻었고, 윤덕여 감독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윤 감독이 여자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12년 12월 27일이었다. 여자 축구를 지도한 경험이 전혀 없던 윤 감독은 단 30개월 만에 한국 여자 축구의 월드컵 기적을 조련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시련도 많았다. 무엇보다 '정통 여자 축구' 출신이 아닌 만큼 남자 축구만 맡아왔던 지도자가 축구협회의 '낙하산 인사' 덕분에 여자 대표팀을 맡았다는 불편한 시선도 존재했다.
여기에 여자 축구의 저변이 엷은 국내 상황에서 충분한 대표팀 소집 기회는 물론 변변한 친선전도 치르지 못했다. 그나마 지휘봉을 잡고 나서 두 차례씩 치른 키프로스컵과 중국 4개국 초청대회가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할 기회였다.
하지만 윤 감독은 모든 것을 이겨냈다.
현역 시절 처음 경험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두 경기를 치르면서 한 차례 퇴장까지 당하며 생긴 '월드컵 트라우마'도 이번 기회에 깨끗이 씻어냈다. 더불어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여자 월드컵 16강 사령탑이라는 명예까지 차지했다.
윤 감독은 선수들에게 인자함으로 다가섰다.
"현역 시절 지기 싫어하고 근성과 투지가 좋았다"라며 스스로 "성질이 안 좋다"라고 말했지만 윤 감독은 30개월 만에 여자 선수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인자함'으로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결국 윤 감독은 2015 여자 월드컵을 통해 '여자 축구 이방인'에서 '여자 축구 중심'으로 변신하며 지도자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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