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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승객 뚝… 택시 31년 몰았지만 요즘이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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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승객 뚝… 택시 31년 몰았지만 요즘이 최악"

입력
2015.06.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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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이용객이 주고객

메르스 여파 예약 90% 취소

"출국 승객만 있고 입국 발길 급감,

사태 진정 땐 한달 내 회복" 기대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31년째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 정원봉씨는 "이달 들어 입국 손님은 단 한 팀뿐이었지만 메르스 사태만 진정 되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31년째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 정원봉씨는 "이달 들어 입국 손님은 단 한 팀뿐이었지만 메르스 사태만 진정 되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지난 19일 인천국제공항 청사 1층 도착 출구 택시 승강장 앞에 대형 모범택시 세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예전 같으면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손님이 탔을 텐데 줄 잡아 1시간 가까이 흐르도록 좀체 손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모범택시의 주 고객인 외국인들이 지난달 중동호흡기증후근(메르스) 발병 이후 뚝 끊긴 탓이다.

승강장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던 기사 정원봉(53)씨의 택시를 탔다. 스타렉스를 리무진으로 개조한 정씨의 택시는 최대 7명까지 탈 수 있는 대형이지만 가격은 모범택시와 동일하다.

“오늘도 빈 차로 나가는 줄 알았는데, 고맙습니다.” 정씨는 행선지를 묻기 전 감사 인사부터 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시내까지 달리면 8만원 정도 나온다. 왕복 140㎞ 통행에 필요한 휘발유 값과 톨게이트 비용을 제하면 5만원 정도 남는다. 이게 요즘 정씨의 하루 벌이다.

최근 체감 경기는 정씨의 31년 택시기사 인생 중 최악이다. “군 제대하고 지금까지 택시를 몰았지만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보다 더하네요.” 2002년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발병한 사스는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을 거쳐 전세계로 확산됐다. 반년 넘게 8,273명이 감염돼 775명이 사망하며 9.6% 치사율로 지구촌을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국내에서 4명이 감염됐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사스때는 세계적으로 국가간 이동을 자제했지만 지금은 한국을 콕 집어 기피하는 분위기다.

도대체 얼마나 승객이 줄었는 지 묻자 정씨는 자그마한 수첩을 건넸다. 그는 특별히 아랍에미리트대사관 소개로 중동서 찾아오는 의료관광객을 태우는데, 수첩에 손님 이름과 행선지가 적혀 있었다. “1일부터 17일까지 50개팀이 출국하는 동안 들어온 팀은 고작 1개 뿐입니다.”예전 같으면 출국 숫자 만큼 입국 숫자도 많았다.

정씨는 모범택시만 승객이 줄어든 게 아니란다. “하도 손님이 없어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물어봤어요. 하루 1,200대였던 택시가 지난주 목요일에 650대로 반토막 났답니다.” 그는 줄어든 부분이 대부분 외국 여행객들이고, 지금도 계속 줄고 있어 더 큰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씨는 남 걱정을 시작했다. “외국 관광객들이 한창 몰려올 때 객실 부족하다고 2, 3년 전부터 호텔들이 객실을 30% 이상 늘렸잖아요. 그러니 요즘 호텔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근처 식당, 상점들은 또 어떻고요.” 그의 걱정은 서울에서 시작해 제주, 경주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까지 이어졌다.

22일 오전 서울 광진소방서에서 소방대원들이 메르스 의심환자 병원 이송을 위해 긴급출동을 하고 있다. 광진소방서 제공
22일 오전 서울 광진소방서에서 소방대원들이 메르스 의심환자 병원 이송을 위해 긴급출동을 하고 있다. 광진소방서 제공

서울에 접어들 무렵 정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 지방 공장 방문 건 취소라구요? 상황이 이런데 어쩔 수 없죠. 다음에 가실 때 꼭 연락해주세요.”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국내 중소기업에서 지방 공장을 가거나 외국에서 바이어가 찾아올 때 공항에서 데려오는 일을 미리 계약해 맡기지요. 그런데 요즘 이렇게 예약한 물량 중 90% 정도를 취소해요. 그만큼 바이어들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소립니다”

하지만 정씨는 메르스 사태가 진정 되면 한 달 안에 자신을 비롯해 관광산업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 외국 관광객들이 위약금을 떼이지 않기 위해 1주일 전에야 취소하기 때문에 아직 7월 이후 예약을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르스 환자가 줄어들면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을 다시 찾을 것이란 생각이다.

정씨는 다행히 중소기업들과 연계해 바이어들을 태우면서 단골도 확보했다. “몇 개월 전까지 단골이 많아 벌어놓은 걸로 두어 달 버틸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의뢰로 외국 바이어들 공장 견학도 시키면서 3,4일씩 두루 태우고 다니면 목돈을 만질 수 있었죠.” 정씨는 그럴 날이 다시 오리라 믿고 있다.

허정헌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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