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기시다 외교장관 회담
한국 정부 지속적 외교 압박에
日 "등재 무산될라" 위기감 반영
위안부 문제 등 현안 놓고 신경전
후쿠시마 수산물 규제도 의견 교환

21일 도쿄 미나토구(港區) 외무성 공관에서 진행된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선 양국간 켜켜이 쌓인 핵심현안들이 일괄 논의됐다. 특히 일본이 한국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알리는 설명이나 표지판 설치 등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데 사실상 합의했다. 최고위급 외교채널이 복원되면서 한일 관계의 냉각모드는 상당부분 해소되는 분위기다.
윤 장관은 이날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책임있는 세계유산 회원국으로서 이 문제를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타결하자는 공통인식을 갖고 충분히 협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종 등재여부를 결정할 제39차 독일 세계유산위원회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데다,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일본을 압박한데 따른 결과다. 일본으로선 만에 하나 표결까지 가서 등재자체가 연기되거나 무산되는 위험을 감안한 판단으로 보인다.
당초 일본은 강경론을 고수해왔지만 최근 윤 장관이 유럽에서 강제징용 역사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시키자 총리관저의 기류도 유화적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일본 외교소식통은 “아베 정권으로선 한국정부의 방해외교가 가장 아쉬웠고 곤혹스러웠다고 한다”며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일본인의 자부심이나 총리관저의 관심도가 워낙 커 이 부분을 절충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장관은 최대 쟁점 현안에서는 뚜렷한 돌파구를 만들지 못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의 해결 문제를 두고 양측은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고 금전적 지원을 한다는 큰 틀엔 공감했지만 사과 및 지원의 주체나 성격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은 또 회담에서 전후 70주년 일본 총리 담화에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이 분명히 표명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집단 자위권 법제화에 대해서도 윤 장관은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는 가운데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기시다 외무상은 "한국 및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산 수산물 수입규제와 관련해 양국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달 24일 시작하는 양자 협의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라며 한국정부가 수입규제를 풀지 않고 있는데 대해 압박하고 있지만, 윤 장관은 한국 민간전문가의 후쿠시마 연안 표본조사 결과가 아직 공식적으로 판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의 방일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5월 당시 김성환 장관이 한중일 정상회담 수행차 방문한 이후 4년여 만에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다자회의를 계기로 하지 않는 순수 양자 외교장관 회담도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이날 일본 우익인사들은 윤 장관이 도착한 하네다 공항 근처와 윤 장관 숙소인 도쿄 도내 호텔 앞 등에서 ‘종군 위안부를 배척하라’ 등의 구호가 적인 현수막을 편 채 반한(反韓) 시위를 벌였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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