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은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해 국교 정상화를 이뤄냈지만, 이는 또 다른 50년 한일 갈등의 시작이었다. 협정문에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적시하지 못했고, 개인 청구권 문제도 따로 규정하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봉합하면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근본적 한계를 노출시켰다. 그래서 65년 협정은 ‘미완의 협정’으로 남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한일 협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불법성을 명확히 정리하고 넘어가지 못했다는 점을 꼽는다. 특히 한일 기본관계조약 2조에선 한일병합과정에서 양국이 체결한 과거 조약이 “‘이미’무효임을 확인하다”라고 적은 부분이 논란이다. 양국은 ‘이미’라는 부사를 언제부터 적용하느냐를 두고 해석을 달리했다. 한국은 일본의 부당한 식민지배로 과거 조약은 원점부터 무효였다고 주장하며 일본 책임론을 제기하는 반면, 일본은 원래는 식민지배가 합법이고 유효했지만,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건국 등으로 65년 현재 무효가 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피해가기 위한 일본의 억지, 이를 바로잡지 못한 당시 정부의 결정 때문에 갈등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다만 한일협정 체결 이후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1995년)와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년)에서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하긴 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협정 자체에 사죄와 반성이 없었던 점은 아쉽지만, 그 뒤로 일본 정부의 담화를 통해 65년 체제는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며 “화석화 돼 있는 게 아닌 만큼 일본이 더욱 진전 시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재협정을 맺는 것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개인 청구권 문제도 65년 체제를 뒤흔들고 있는 또 다른 뇌관이다. 양국은 협정문에서 청구권 문제와 관련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고 못 박았다. 청구권 자금 성격도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라는 표현 대신, 민사 채권 채무 성격의 ‘재산 및 청구권’과 ‘경제협력’이라는 표현으로 포장됐다. 이 자금은 박정희 정권 경제개발의 마중물로 쓰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대해 정부가 분쟁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2011년)하고,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2012년)을 대법원이 내리면서 개인 청구권 논란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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