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운 며칠이었다. 나는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 다만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과와 변명은 길면 길수록 백해무익이라는 것. 그 누가 보아도 표절임에 분명한데, 이걸 두고 문학적 성취 운운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에 도취되어 스스로의 힘을 과대평가한 과대망상의 결과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을 듯싶다. 오죽하면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겠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산다. 누구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영향을 받다보면 따라하고 싶어지고, 계속해서 따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것이 마치 내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바로 수많은 작가들이 표절의 유혹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니까, 질문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과연 표절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잘 영향 받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소개해본다. 로다운 30(Lowdown 30)이라는 국내 밴드의 신곡 ‘더 뜨겁게’다. 로다운 30은 기타리스트 윤병주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그룹. 윤병주는 과거 노이즈가든(Noizegarden)이라는 헤비메탈 밴드를 통해 한국 록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연주자요, 작곡가다. 노이즈가든의 해체 이후 그는 취미로 가볍게 합주나 할 밴드를 모토로 로다운 30을 결성했는데, 그래서인지 거의 5년이 지나서야 데뷔작 [Jaira](2008)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로다운 30은 어떤 의무감 따위를 거의 지니지 않았던 밴드였다. 고로, “뭔가 필사의 걸작을 써내야한다”는 창작의 고통 따위 그리 심하진 않았을 게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누군가의 영향력을 드러내는데 있어 주저함이 없다. 이번에 발표한 신곡 ‘더 뜨겁게’를 먼저 들어보라. 음악 좀 들은 마니아라면 단번에 몇몇 이름을 반사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도입부의 빈티지한 기타 리프는 영락없이 게스 후(The Guess Who)의 ‘American Woman’에 대한 오마주다. 그들은 이 곡의 차진 리프를 변형해 이것을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걸작 ‘Manic Depression’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결합해냈다. 이 두 곡을 알고 있는 팬이라면, 로다운 30의 이 노래가 굉장히 친숙하게 들릴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어쩌면 이 곡은 레퍼런스와 클리세로만 조합된 ‘열화복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 유명한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Eric Clapton)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나는 클리세의 마스터(I'm the master of the cliche)”라고. 그러니까, 어떤 경지에 이른 뮤지션에게는 클리세나 레퍼런스마저도 창작의 원천이 된다. 비록 그것이 상투적인 문법일지라도 누가 다루느냐에 따라 천양지차의 결과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걸 ‘창조적 변용’이라고 부른다.
로다운 30, 정확히 말해 윤병주는 이것을 정말이지 잘 파악하고 있는, 재능 있는 뮤지션이다. 사실 나는 재능이란 게 별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능이란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과 결핍을 ‘냉정하게’ 인지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앞의 문장의 방점이 ‘냉정하게’에 있음을, 적어도 윤병주는 잊지 않았다. ‘더 뜨겁게’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진짜 정서, 그것은 바로 ‘더 차갑게’다.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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