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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책'이 전하는 전쟁, 분단 그리고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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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책'이 전하는 전쟁, 분단 그리고 평화

입력
2015.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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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의 딸 등 9명 현충원 찾아 시민들과 소통하며 북한 경험 공유

"北이탈주민에 대한 선입견 버리길"

6ㆍ25전쟁 65주년을 맞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20일 열린 ‘평화의 사람책 도서관’ 행사에서 박용현(맨 왼쪽)씨가 전쟁기간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각보 제공
6ㆍ25전쟁 65주년을 맞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20일 열린 ‘평화의 사람책 도서관’ 행사에서 박용현(맨 왼쪽)씨가 전쟁기간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각보 제공

“저는 ‘괴뢰군 43호’의 딸이었습니다. 그 삶은 눈물과 한숨의 연속이었지요.”

6ㆍ25전쟁 발발 65주년을 닷새 앞둔 2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북한이탈주민 A(50)씨가 청중 앞에서 덤덤히 지난날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북에서 태어나 탈북 직전까지 선전대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방송을 하며 생활했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에도 ‘출신성분’ 탓에 번번히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고 멸시를 받았다. 아버지가 국군포로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괴뢰군 43호는 북에서 바로 국군포로를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부친 역시 30여년간 탄광에서 채탄공으로 일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숨을 거뒀다.

A씨는 “발파사고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아버지는 언제나 ‘곧 통일이 돼 고향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며 “그런 그에게 ‘차라리 전쟁 때 죽어 버리지 왜 나를 낳았느냐’는 독설을 내뱉은 일이 너무나 후회된다”고 말했다. A씨의 사연에 70여명의 청중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현충원은 ‘살아있는 역사책’의 도서관이었다. 북한 함경도에서 학생을 가르친 선생님,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70대, 북한이탈주민 청년 등 9명이 전쟁과 남북분단을 주제로 시민들과 소통에 나섰다. 2000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사회운동 ‘사람책(Human Book)’처럼 시민단체들이 만든 ‘평화의 사람책 도서관’의 연사가 됐다. 이들은 책이 돼 독자와 자유롭게 대화하고 또 경험을 공유했다.

군경의 민간인 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박용현(70)씨는 전쟁의 폭력성을 상기했다. 박씨는 “전쟁 때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를 목총으로 마구 폭행한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이념의 잣대로 자행된 비극을 기억하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경도에서 30여년간 교사생활을 한 B씨도 “분단이 길어지면서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왜곡되지 않은 역사, 평화의 교훈을 가르칠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을 거둬 달라는 당부도 나왔다. 북한에서 군 입대 직전 월남한 김모(27)씨는 “막연히 북한 학생들은 현대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 같지만, 그곳에서도 영어를 배우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경쟁이 있다”며“지역과 계층에 따라 북한 주민의 삶도 다양하다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김숙임 조각보 대표는 “통일의 초석은 어떤 정책이나 몇몇 정치인의 결정이 아닌 편견의 해소와 아픔에 대한 공감”이라며 “더 많은 사람책 발굴로 지속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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