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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장삼이사가 걱정하는 이 정부의 문제

입력
2015.06.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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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에 큰 불이 났다. 불똥이 바람을 타고 온 마을로 번졌다. 그런데 큰 집에 바로 붙은 작은 집만 멀쩡했다. 12년 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비유하면 이렇다. 큰 집은 중국이고, 작은 집은 한국이다. 패닉에 빠진 중국 사람들은 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한국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 내에서의 김치 품귀 현상도 그런 인식의 하나였다. 우리 정부도 당시 공항, 항만에 대한 검역과 위험지역에서 온 의심환자에 대한 격리조치를 취했지만, 공포에 질린 세계가 다 그랬다. 운 좋게 불똥이 비켜갔다.

사스의 사촌격이라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정부 대응은 삼성서울병원 부실관리를 비롯해 여러 가지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치를 먹는 한국인은 사스류에 강하다는 허황된 자만이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정부가 초기에 국제기준에 따라 대응했지만 결과적으로 초동 대응에 허점이 있었다”고 했다. 최초 환자 확진 후 격리 대상자 선정 및 의심환자 추적 허점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환자와 2m 이내의 밀착 접촉자에 대한 격리를 권고했고, 보건당국은 최초 환자가 있었던 평택성모병원 입원실만을 중심으로 가족과 의사 등에 대한 격리를 취하면서 확산 빌미를 제공했다.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비말(飛沫) 감염으로 알려진 2003년 사스의 전파 예를 보면 미숙한 판단이 분명해진다. 사스의 세계적 확산은 홍콩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비롯됐다. 사스 발생지역인 중국 광둥에서 환자 치료를 하던 중국인 의사가 감염 상태에서 이 호텔에 투숙하다 미국 유럽 등 7개국 투숙객에게 사스를 옮겼다. 이 의사의 객실은 9층으로, 감염자 가운데는 엉뚱하게도 11층, 14층 투숙객도 있었다. 후에 이루어진 역학조사에서 밀폐 공간인 호텔 엘리베이터가 감염경로로 추정했다.

메르스 감염이 2m이내 접촉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환자 동선을 100% 파악할 수 없다. 밀착접촉자가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김문식 전 국립보건원장이 “최초 환자 발생 때 더 큰 투망(격리대상 범위)을 던졌어야 했다”고 말한 것도 다양한 전파경로와 숨은 변수까지 고려해 격리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예측 불가능한 감염경로에 비춰 국제기준은 최소한의 요건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인식도 그렇고, 보건당국도 국제지침이 최대치, 신성불가침인양 행동했다. 매뉴얼이 으레 그렇듯이 면피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수준으로 작동했다.

흔히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 한다. 전문가들은 국방, 국가안보에 빗댄다. 사스 홍역을 치렀던 대만 부통령은 ‘3차 세계대전’에 빗댔다. 전쟁이 길어지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합참의장 당시 해외 분쟁 개입 시 압도적인 전력으로 이른 시일에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미군은 육ㆍ해ㆍ공군의 합동성은 물론 전자전, 심리전까지 총망라한 전력투구로 1차 이라크전 당시 200여명의 희생자만 냈다. 손자병법은 우리 정부의 메르스 대응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기는 군대는 무거운 추로 가벼운 물건을 재고, 지는 군대는 가벼운 추로 무거운 물건을 재며, 싸움에 이기려면 천길 골짜기에 가둔 물을 일시에 터뜨리듯이 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 한 식당에서 경비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메르스 사태를 이야기하면서 “정부가 호들갑을 떨지 않아 문제가 커진 것 아니냐”는 말을 옆에서 들었다. 박 대통령은 참여정부와의 비교가 거북했던지 유입을 차단해야 했던 사스와 유입된 뒤 병원감염이 일어나고 있는 메르스의 양상은 다르다고 했는데, 그 때와 지금 초기 대응에서 호들갑과 긴장의 정도가 달랐다. 가래를 들어야 할지, 호미를 들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게 이 정부의 문제다.

정진황 기획취재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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