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문제아들의 수용소로 전락… 일부선 '대안' 없이 검정고시 수업만

알림

문제아들의 수용소로 전락… 일부선 '대안' 없이 검정고시 수업만

입력
2015.06.20 04:40
0 0

위탁 대안학교의 현주소, 학생 상담 기록부 아예 없는 곳도

대전 '두런두런' 학교 가 보니, 적자 年 3000만원 운영 '허덕'

1년 전만해도 자퇴를 결심했던 류모(18)군은 어느덧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대전시 건신대학원대학교가 운영하는 위탁형 대안학교 ‘신나는 배움터 두런두런’(이하 두런두런)을 다니면서다. 류군 스스로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지역 명문고인 원 소속 학교에서 류군은 문제아이고, 학교부적응자였다. 그 학교는 반(半) 삭발 수준(18㎜)으로 두발 제한을 할 정도로 교칙이 엄격하고 공부를 많이 시킨다. 2학년이 되면서 야간자율학습 참여를 놓고 담임교사와의 갈등이 커져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했다. 자퇴를 만류하며 위탁형 대안학교라도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부모 권유에 못 이겨 찾은 게 이 대안학교다. 류군은 “다녀보니 괜찮아 계속 다니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수업을 참관했던 지난 17일 아이들은 시종일관 생기발랄했다. 일반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의 얼굴에서 짜증이나 지겨움은 볼 수 없었다. 류군을 포함해 저마다 다른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7명의 학생들이 냉장고 속 재료로 요리하는데 열중했다. 일반 학교에서처럼 국어나 수학, 영어가 아닌 학생들이 기획한 ‘기대만족’ 시간이다. 치즈김치해물닭가슴살찜을 만드는 류군의 얼굴에 진지함이 가득 묻어났다. 두런두런 교사 김경보씨는 “처음 한 두 달은 엎드려 자기 일쑤였는데 2학기부터 이런 수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10개나 할 정도로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자퇴하려다 2년 전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박모(17)양은 “뭘 억지로 시키지 않아서 좋다”며 “작년에 처음으로 국가공인이 된 네일아트 자격증도 땄는데 내가 아마 최연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200여개가 있는 위탁형 대안학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학적은 원래 학교에 둔 채 위탁을 받아 교육한다. 학교 졸업장을 타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대부분이 류군처럼 학교가 맞지 않아 그만둘 결심을 하거나 학교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손을 든 친구들이다. 1990년대 입시ㆍ성적 압박에 못 이긴 자살, 학교 중도탈락 등이 기폭제가 되면서 문화운동 차원에서 대안교육운동이 시작된 지 20년. 2001년부터 시작된 위탁형 대안학교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간 공교육 바깥에서 대안교육 실험이 있었다면, 공교육 내에서 대안적인 교육을 해보자는 시도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중도 탈락 위기의 학생 등 다양한 교육 수요를 끌어안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두런두런처럼 학생 만족도가 높은 위탁형 대안학교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3년 전 두런두런이 문을 열기 전 있었던 이 지역의 한 위탁형 대안학교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서 학생 수를 늘리며 지원금을 받아온 게 문제가 돼 지정 취소됐다. 교육당국의 관심과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종의 문제아 수용소처럼 돼 가고 있는 것도 위탁형 대안학교가 처한 딜레마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학교반란’은 이러한 현실을 들춰내고 있다. 2013년 한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교장을 맡았던 송동윤 감독은 “대부분 아이들이 엎어져 자고, 심지어 교사를 위협까지 하는, 통제가 안 되는 절망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 대부분이 기존 학교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로 일반 학생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더 훌륭한 교사의 관심과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였다”며 “문제아들을 한 곳에 모아 방치하는 곳에서 아이들이 뭘 얻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학교는 어쩌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탁형 대안학교에 떠넘긴 뒤 뒷짐을 지고, 교육당국 역시 지원은 하지 않은 채 학업 중단자 수 줄이는 데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태욱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 교수는 “위탁 과정이 교육이라는 데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재 학생 30명을 위탁 중인 두런두런은 7명의 상근 교사가 열정페이(월 70만원)를 받으면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 과정 석ㆍ박사나 대안학교 출신들이다. 그런데도 1년에 3,000만원 적자가 나 하 교수가 외부 프로젝트 등 가욋일을 해서 받은 돈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대전시의 경우 위탁 학생 한 명당 하루 1만원 지원비가 나오지만 이 돈은 프로그램 운영비로만 쓸 수 있어 상근교사 인건비로는 지출할 수가 없다. 두런두런에서는 수업마다 교사 1명과 보조 교사 1, 2명이 함께 들어가 수지를 맞출 수 없는 구조다. 지역에서 입소문 날 정도로 궤도에 올랐지만 이런 방식으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게 두런두런의 고민이다.

하 교수는 “교육청에서 위탁형 대안학교 지정 시 전문성, 특수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상담기관이나 수련관 등을 마구잡이로 섭외한다”며 “이런 기관들은 애들을 모아놓고도 뭘 해야 될지 몰라 공부가 싫어 나온 아이들을 데리고 검정고시 준비만 시킨다”고 지적했다. 위탁형 대안학교 감사를 나갔더니 상담이나 관찰 기록 등이 담긴 학생 파일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대안학교가 한국사회에 진입한지 20년이 지난 가운데, 교육 다양성 확보는 뜻깊지만 '문제아 학교' 아니면 '귀족 학교'로 전락했다는 우려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안학교가 한국사회에 진입한지 20년이 지난 가운데, 교육 다양성 확보는 뜻깊지만 '문제아 학교' 아니면 '귀족 학교'로 전락했다는 우려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