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인도적 차원으로만 접근하려 해
피해자 개인 특정할 수 있는 경우
가해국 책임 인정하는 게 세계적 흐름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은
번복할 수 없도록 명확히 사죄한 후
자료 전면 공개하고 배상은 필수

재일교포 학자로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전문가로 활동중인 김부자(金富子) 도쿄외국어대학대학원 국제학연구원 교수가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한일관계를 진단했다. 김 교수는 20일 도쿄 신주쿠(新宿)구에서 진행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현재 막바지 단계인 것으로 알려진 위안부협상에 대해 “50년전의 미흡한 한일협정으로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다”며 “위안부협상이 제2의 한일기본조약이 돼선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1965년 한일협정과 비슷하게, 쉽게 위안부 협상을 해선 안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피해국이 기억을 계승하려는 행위를 가해국이 간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1965년 한일조약의 청구권 협상으로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일본 측 주장이 이율배반적이라며 “정작 일본정부는 시베리아에 억류된 과거 일본군 병사들이 소련에 제기했던 강제노역 소송에 대해 개인이 소련정부에게 배상요구 할 권리가 있다고 누차 입장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_위안부 문제를 넘어서지 못해 한일관계가 수년째 답보상태다. 어느 쪽에 책임이 있나.
“일차적으로 가해국에게 책임이 있는 게 상식이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 정부는 식민지 말기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한 마을에 대한 학살사건에 대해 2011년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 배상을 했다. 네덜란드 정부도 처음부터 이런 조치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피해자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 그 책임을 국가가 인정하는 게 식민지를 운영했던 나라들 사이에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처럼 피해자가 분명히 확인되는데도 일본정부가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경우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_2012년 당시 위안부협상 타결을 위한 이른바 ‘사사에 안’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양국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당시 일본 측이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추진했다. 인도적이란 것은 자신들은 책임이 없는데 시혜적으로 선의를 베푸는 것이다. 위로금을 내겠다는 것은 그래서 실패했다. 일본정부가 정말 책임감을 느끼는지 의심을 받았다. 이때의 교훈은 결국 피상적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협상이 당시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_김 교수가 주장하는 위안부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전쟁과 여성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VAWW RAC)’와 함께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여했다. 우리는 ▦번복할 수 없도록 명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 ▦사죄의 증거로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 ▦일본정부 보유자료를 전면공개하고 일본 국내외에서 새로운 자료조사, 국내외 피해자와 관계자의 증언조사 등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재발방지 조치로서 의무교육 과정의 교과서 기술을 포함한 학교ㆍ사회교육 실시, 추모사업이 필요하다. 잘못된 역사인식에 근거한 공인의 발언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공식적으로 반박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실인정이 가장 중요한데 이것 조차 안하고 있지 않나.”
_일본 측은 한국의 강경한 민간단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사사에 안’을 정대협이 반대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직접 확인해봤더니 정부측에서 의견을 묻거나 했던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지난주 BS아사히 TV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를 정대협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방송에 나왔다. 허위사실이다. 실제로 고소한 주체는 ‘나눔의 집’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었다.”
_구체적으로 어떤 방송이었나.
“지난 14일 한일국교정상화 50년 기념방송에서 그런 거짓을 전달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그런데 작년 12월에는 더 심한 일도 있었다. 일본의 한 교수가 공개강연장에서 세계적으로 국가모욕죄가 있는 나라가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가 (터키가 가해자인)아르메니아인 학살문제를 거론하면 안되는 터키, 다른 하나가 한국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를 한국측에 불리하게 썼다는 이유로) 박유하 교수를 국가모욕죄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이런 식의 오해가 일본 사회에 많이 퍼져있어 심각하다. 정대협에게 과격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일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과의 협상에서 시민단체를 핑계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다.”
_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많다. 그 분이 문학연구자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1944년 8월22일 일본과 조선에서 동시에 공포 시행된 여자정신근로령 이후 조선에서는 정식 모집되지 않았다고 했고, 조선인 위안부의 대부분이 소녀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또 일본군보다 조선인 업자의 책임이 무겁다며 위안부 제도를 입안ㆍ관리ㆍ통제한 일본군의 책임을 경시하고 있다. 사병들과 조선인 위안부간의 연애나 동지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제국의 위안부’라고 말하는데 이는 일본인 위안부와 혼동하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아니라 ‘식민지의 위안부’였던 게 실태다. 올 여름에 ‘식민지의 위안부’(가제)란 책을 내서 이를 반박할 것이다.
_박 교수의 저술에 대해 일본 내에선 좋은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
“일본 현대문학계의 명망가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郞)가 ‘한일화해 방안은 피해자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박 교수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서 용서의 당사자는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피해 당사자가 아닌 쪽에서 용서방식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억압적이다. 누가 양보나 타협을 강요할 수 있나. 진정한 화해는 가해국이 역사와 책임을 마주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나 순서를 무시한 화해론은 위험하다.”
_현재 일본정부의 위안부 협상 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에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다고 들었다. 지난 4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에 와서 행사에 참여했는데 소녀상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김 할머니는 그때 소녀상에 대해 과거를 잊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다. 일본정부는 대만에 대해서도 위안부기념관을 처음으로 개설한다는 소식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나서서 일본의 입장과 다르다는 발언을 했다. 압력으로 느낄 수 있다. 피해국이 하는 기억계승에 가해국이 간섭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독일이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유적에 대해 철거하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가능하겠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_박근혜 정부의 대일외교를 어떻게 평가하나.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50년 전의 한일협정 때문에 지금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에서는 위안부 기념관도 만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거나 위안부 박물관을 만들거나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를 어떻게 일본에 대해 원칙외교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위안부 피해자들도 여성이고 국민이기 때문에 한번 만나서 얘기도 듣고 하는 게 좋을 것이다.”
_한국과 일본에게 동시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제가 피해자를 대표할 수 없어서 일본에 양보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냐는 대답은 하기 어렵다. 가해자가 사실인정부터 해야 한다. 위안부 책임 인정이 일본국민의 자존심 훼손은 아니다. 또 한국이 일본에게 요구하는 것은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한국도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베트남 민중에게 한 가해사실도 사과해야 한다. 국가를 떠나서 여성운동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다.”
글ㆍ사진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libo.com
▶ 김부자 교수는
김부자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학술적으로 다루는 ‘정의를 위한 투쟁ㆍFight for Justice’(http://fightforjustice.info/)를 주오(中央)대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 니시노 루미코(西野瑠美子)씨와 함께 개설해 운영 중이다. 조선근대사와 여성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우리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처음 알린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가 1990년대 초 일본에 와 강연을 했을 때 감동을 받은 이후, 위안부 문제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윤 교수의 저작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는 양징자씨 등 재일동포 동지들과 의기투합했다.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이란 국제적 민중재판 행사를 추진한 주역으로 당시 히로히토 일왕 등에 유죄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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