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 중에 한 집은 1인 가구인 시대, 세 집 중 한 집이 될 날이 머지않은 지금도 그림책 속 크고 작은 집들은 부모와 아이들로 복닥거린다. 그림책 속 가족 신화는 공고하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지도 오래, 몇 년 안에 초고령 사회가 될 거라지만 그림책 속 노인들은 여전히 평화로운 얼굴로 세월이 가르쳐준 지혜와 사랑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나 현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 65세 이상 노인 5명 가운데 한 명이 독거노인이다. 바로 그 현실을 신인 작가 이지윤이 그림책 ‘안녕하세요?’에 담았다.
녹슨 철문을 밀고 아주머니 한 명이 마당으로 들어선다. 힘겹게 끌고 온 손수레를 대문 안으로 막 들여놓을 참이다. 보글보글 짧은 파마머리에 선명한 팔자주름, 편해 보이는 바지 차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더분한 중년 여인이다. 바둑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지만 아주머니의 눈길은 집 안을 훑느라 바쁘다. 무청과 빨래가 나란히 널려 해바라기하는 빨랫줄, 수돗가에 얌전히 갈무리된 빨래판과 빗자루, 물기를 빼려고 세워둔 슬리퍼. ‘아, 별일 없구나!’ 이내 아주머니가 목청을 돋운다. “안녕하세요?”
순이 아줌마는 독거노인 돌보미, 가족 없이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28명을 돌본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안부를 살피고 일손을 돕고 말벗이 되어 준다. 과일 장사하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김복희 할머니, 원양어선 타던 이야기는 신나게 늘어놓지만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벙어리가 되는 이만수 할아버지, 가족 대신 강아지에게 정을 붙이고 사는 최복실 할머니, 장기를 좋아하는 박정남 할아버지, 몸이 불편해 문밖 나들이조차 못하는 박명자 할머니…. 구불구불 비탈길을 지나면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는 달동네, 이마를 맞대고 다닥다닥 늘어선 나지막한 지붕마다 우리가 잊고 지낸 이웃들이 살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글도 그림도 소박하고 진솔하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저 담담히 우리 시대의 삶,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며 마음을 흔든다. 손바닥만 한 쪽방에 누워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할머니, 순이 아줌마의 손을 부여잡고 놓을 줄 모르는 할머니, 불러도 대답할 이 없는 집 앞에서 “저 왔어요. 안녕하세요?”를 되뇌며 서성이는 순이 아줌마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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