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22일)을 맞아 일본을 방문하는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성장관과 회담을 갖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막판 타결을 시도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측의 협상 기조는 2012년 초 논의했다 불발된 ‘사사에 안(案) ’을 출발점으로, 이보다 진일보한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사에 겐이치로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한국에 들고 온 이 안은 일본 총리가 사과편지를 쓰고, 주한 일본 대사가 피해자들을 찾아 편지를 전달하고, 정부예산을 통해 피해자에게 금전적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가 최종적으로 이를 거부한 것은 위안부 강제성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 미흡하고, 금전 지원의 성격이 우리가 요구하는 배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양쪽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협상과정을 보면 일본이 사사에 안에서 오히려 후퇴한 입장을 고수하고, 우리측이 이를 마지못해 수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줘 걱정이 앞선다. 지난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피해자에 대한 일본정부의 재정지원, 일본 총리의 사죄와 책임이 언급된 성명발표, 여기에 한국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보증하는 내용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일본 정부예산을 사용해야 ‘일본 정부가 국가 책임을 사실상 인정해 돈을 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한국 정부가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대로라면 우리 정부의 핵심 요구사안인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우리측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는 거론도 못하고, 금전의 성격에 대해서만 애매모호한 절충을 시도하는 게 된다. 일부에서는 금전 성격에 대해 양국이 서로 편리한 정치적 해석을 하고,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는 선까지 논의가 오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사사에 안은커녕 1995년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미명하에 돈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이런 결과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물론이고 국민 여론도 설득할 수 없다. 한일 양국이 대승적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안보와 경제를 위해 과거사를 대충 처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왕 사과 등의 입장에서 물러나 일본정부가 위안소를 설치ㆍ관리ㆍ통제했고 이것이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것을 인정해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대협의 대표성 여부를 떠나 이 정도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위안부 협상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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