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법안 분리시켜 하원 전격 처리
상원 통과하려면 공화·민주 반란파 물밑거래가 관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역점 정책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이 고도의 ‘정치적 수 읽기’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18일 가까스로 미 하원 문턱을 넘은 TPP 관련법이 상원까지 통과하려면 민주당의 반란 성향 의원들에게 공화당 지도부가 ‘정치적 신뢰감’을 줄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 우리 외교당국은 ‘TPP가 타결되지 않으면 한국이 반사 이익을 챙기게 된다’는 일부 분석이 한미 관계의 틈을 벌리려는 일본의 소재로 이용될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날 미국 하원은 TPP 핵심 법안인 무역협상촉진권한(TPA) 관련 법안을 전격 처리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친정인 민주당 반대로 엿새 전 부결됐던 법안 중 통과가 용이한 TPA만 별도로 떼어 새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킨 것이다. TPP 성사를 핵심 치적으로 여기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반대세력인 공화당 도움으로 회생의 불씨를 살린 셈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 TPA 권한을 얻어내고 TPP를 성사시킬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원이 넘긴 법안을 상원도 승인해야 하는데, 현재 의석 분포상 통과에 필요한 60석을 얻으려면 10명 이상의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이 공화당 편에 서야 한다.
문제는 TPP를 지지하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반란’의 명분으로 무역개방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를 지원하는 법안(TAA)의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 월스트리트저널은 “공화당 지도부는 일단 TPA를 통과시킨 뒤 차후 TAA도 처리한다는 입장이지만, 뿌리깊은 정파간 불신 때문에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TPA를 통과시키고 난 뒤 공화당이 평소 떨떠름하게 여겨온 TAA법을 방치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백악관이 ‘TPA만 통과되고 TAA가 부결될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TPA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는 언론 질문에 즉답을 피하고 있는 것도 일부 의원들의 불신을 부채질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TPP 성사는 민주당의 ‘반란 성향’ 의원들이 공화당 지도부를 신뢰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TPP 운명을 둘러싸고 한일간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TPP가 무산되면 일본 대비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대미 외교에서 우리 입지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이 국익의 상충 가능성을 꼬투리 잡아 한미 관계의 틈을 확대시키는 여론 조성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주미 대사관 직원들에게 ‘TPP가 조기에 성사되고 한국이 이른 시일 내 합류하는 게 우리 국익에 최대한 부합한다’는 점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