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노동개혁 추진은 성공 어려워
사회 공감 위해 정부 신뢰부터 쌓아야
부자증세도 대타협 카드로 써 볼 만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정부가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기 이틀 전인 지난 15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한창이던 3월 말, 4월 초에도 대통령은 수 차례 노사정위원회에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번에 말한 ‘결단’은 결과적으로 밖을 향한 요구가 아니라, 스스로의 다짐에 가깝다.
메르스 파동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1차 개혁방안 발표를 통해 마침내 노동개혁의 첫발을 내디뎠다. 4대 개혁 중 가장 큰 진통이 예상되는 분야다. 노사정 대화가 끝내 결렬됐으나 더 이상은 개혁조치를 미룰 수 없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일단 지난 노사정 대화에서 의견 접근을 본 부분부터 먼저 시행에 들어간다는 제한적 의미로 ‘제1차’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발걸음을 뗀 만큼 내년 4월 총선까지는 내쳐 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으로서는 어정쩡하게 마무리된 공무원연금 개혁에 이어, 또 한 번의 힘겨운 싸움에 앞서 ‘결단’이란 단어로 마음을 다졌으리라.
문제는 대통령의 비장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방적 개혁 추진은 소기의 성과를 낼 가능성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청ㆍ장년과 정규ㆍ비정규직이 상생을 위해 일자리를 나누고, 원ㆍ하청 기업이 상생협력하자는 번듯한 취지지만, 냉정히 보면 핵심 정책들은 여전히 노사의 신뢰와 지지 없이는 공염불로 전락하기 십상인 ‘희망사항’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년 정년 60세 연장에 맞춰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진하기 위한 묘수로 마련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가이드라인 문제만 해도 산업현장 적용은커녕 당장 양대 노총의 파업만 부추기고 있는 상황만 봐도 그렇다.
박 대통령은 그 동안 누차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꼭 해내야만 하는 필수 과제이자 생존전략”이라는 절실한 인식을 표명해왔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방통행식 개혁 추진의 한계를 뻔히 알 텐데도 다시 한 번 사회적 합의를 모아보려는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박 대통령은 최근에도 “노사정이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승적 차원에서 대화를 재개해주기를 당부한다”고 재차 호소했다. 하지만 지난 노사정 대화 결렬 당시 드러난 정부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을 해소하려는 성의가 엿보이지 않는 호소나 당부는 일방적 개혁 추진에 대한 변명 차원의 몸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 내자는 게 노사정 대화의 대강이라는 단순논리로만 보면, 자리를 박차고 나온 노동계야말로 기득권 욕심에 세대 간 일자리 나눔을 거부한 몰염치한 당사자가 된다. 하지만 사정이 그럴 리는 만무하다. 노동계로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도 정작 기업이 청년 일자리를 내주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임금피크제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청년 일자리가 생색용 임시직에 그친다면 전반적 고용여건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음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 노사정 대화 재개를 원한다면 메아리 없는 호소만 되풀이 할 게 아니다. 노동계가 제기한 우려와 의구심을 씻어낼 신뢰할 만한 입장부터 준비해 구체적인 노동계 설득에 나서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
독일이든 영국이든, 노동개혁은 지표경제를 호전시켰지만, 저임금 비정규직을 양산해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낳은 게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뿌리깊은 피해의식을 가진 노동계에 정부가 균형 있는 중재자라는 믿음을 주려면 어떤 식으로든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공정경제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소득 상위 10%의 임금 상승 자제를 통한 일자리 기회 창출”을 언급했다. 정부가 소득불평등 개선의지를 반영한 인식을 갖고 있다면, 굳이 법인세가 아니라도 고소득자 및 자본이득세 과세 강화 등의 세제를 사회적 대타협 카드로 활용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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