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지금보다 나빴던 적 없어
日 국민 절반은 식민지화 사죄 입장
역사불감증 수준 일부 정치가 문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최악의 한일관계를 풀 방법은 없다. 아베 총리가 번복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죄해야 한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ㆍ77) 도쿄대 명예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95년 위안부 피해자 보상을 위해 추진된 ‘아시아여성기금’ 발기인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 역사학자다. 이달 8일 일본 참의원회관에서 일본 지식인 281명이 “위안소 설치 운영은 일본군이 주체가 돼 이뤄졌다는 것이 명확한 만큼 일본이 반성과 사죄 입장을 다시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성명발표를 주도하기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등이 마련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국제학술행사’참석차 방한한 와다 교수를 18일 제주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만났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확실히 상황이 험악하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한일관계가 나빴던 적은 있지만 이 정도는 처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행동(2012년 독도 방문)에 대한 일본의 반발로 험악해진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역사문제로 상황이 더 꼬였다. 중심 이슈가 위안부 문제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고 하고 아베 총리는 받아들이지 않는 팽팽한 상황에서 일본 일부 주간지가 박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고 한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낸 것이 관계 악화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본다.”
-지식인들이 특히 위안부 책임 인정을 일본 정부에 요구한 이유는.
“아베 총리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한일관계를 푸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가 가지는 상징성, 지위가 그만큼 크다.”
-아베 총리의 ‘인신매매’ 표현이 논란이다.
“문제는 군의 관여는 인정하지 않고 인신매매만 언급했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물론 아베 총리는 고노담화(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 관여와 강제성)를 재검토하거나 수정할 의지가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작년 3월 ‘고노담화를 인정한다’고 했다. 그런 다음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인신매매 발언을 했다.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전제에서 범죄로서의 인신매매를 인정한 것이라면 아베의 인식이 한 발짝 진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책임을 인정한 셈이다.”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베 총리가 종전70주년 담화에 어떤 표현을 쓸지는 예측불가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최소한 군이 위안소를 만들었고 여성들을 모집했고 여성들이 자기의 의사에 반해서 성적 상대를 강요당했다는 것에 반성ㆍ사죄해야 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일본이 번복할 수 없는 명확하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일본 여론은 어떤가.
“일부 정치가나 매스컴, 출판사는 역사불감증 수준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50% 이상이 조선을 식민지화한 것에 사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역시 정치다. 사죄나 반성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결집해 있다. 아베 총리는 이 결집세력을 상대하는 동시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국내외의 압력을 받고 있다. 총리로서 후자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일 윤병세 외교장관이 일본을 찾는다. 우선 과제가 있다면.
“어쨌거나 양국이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의지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다는 것을 함께 확인하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교섭의 장을 여는 것 자체가 진전이다.”
-한국 정부, 언론, 학계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대규모의 한일 연구자가 50년간 연구, 교류하며 한 곳에 모여 이렇게 회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다. 상황이 안 좋지만 위안부 문제를 이번에 풀어야 한다는 감정이나 압력이 어느 때보다도 가장 고조됐다. 양국 국민 언론 학계가 전향적 차원에서 협력하면 좋겠다.”
제주=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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