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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 치이거나 먹고사기에 차인 학생들… 학교야 가족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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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 치이거나 먹고사기에 차인 학생들… 학교야 가족을 부탁해

입력
2015.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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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달라도 결과는 가족해체

41%가 학원 못 다니는 금천 D고, 부모가 생계 유지하느라 바빠

절반 넘게 사교육 받는 강남 C고, 부모와 대화 부족해 상처 받아

결국 학교가 안전망

금천고 서울 최초로 직업교육 시작

"진로 찾아 삼의 목표 만들면 어려운 환경 극복할 에너지 생겨"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없어요.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은 라면을 끓여먹거나, 밥에 계란을 비벼 먹어 해결해요.”

서울 구로구 A고 2학년 지혜(가명)는 학원을 다니지 않아 오후 5시면 귀가한다. 하지만 생계 유지만으로 벅찬 이 가족에게 단란한 식사는 사치다. 인쇄소에서 야간 작업을 하는 지혜의 아버지는 오후 5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6시 퇴근한다.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 어머니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귀가한다. 지혜는 “부모님께 ‘외식하자, 여행가자’고 말씀 드려도 ‘돈 벌어야지. 일해야지’라고 대답 하신다”며 “가족과 함께 지낸다는 기분은 별로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B고 1학년 지훈(가명)이도 부모의 얼굴을 거의 보지 못한다. 학교와 학원,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자정 무렵이다. 지훈이는 “지난 토요일에는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올라오셔서 가족 모임을 했지만 학원 시간과 겹쳐서 ‘열외’ 됐다”며 “처음에는 서운하고 죄송했지만 공부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빈부 격차 따라 가족 해체 방식 달라

가족 해체도 빈부 격차에 따라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경제력이 높은 지역에서는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 자녀의 사교육으로 인한 대화 시간 부족이 가족 해체의 주된 원인이다. 반면 저소득 가정이 많은 지역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어 가족 해체가 가속화된다. 지난 3일 A고에서 만난 지혜의 담임교사는 “이 학교 학생의 20% 정도만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나머지는 부모들이 생계 유지에 급급해 자녀 교육을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현실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강남구 C고 학생 146명과 금천구 D고 학생 136명을 대상으로 지난 1~5일 ‘가족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에 응한 강남 C고 학생 중 오후 8시 이전 귀가하는 학생은 12%에 불과했다. 귀가 시간은 오후 10~11시가 66%로 가장 많았고, 오후 11시 이후도 10%나 됐다. 반면 금천 D고에서는 3명 중 1명(33%)이 오후 8시 이전에 귀가했다.

이 같은 차이는 사교육 격차 때문이다. 강남 C고 학생들의 절반 이상(59%)이 학원ㆍ과외 등 사교육을 2~3개 받고 있다고 답했다. 4개 이상 받는 학생도 24%나 됐다.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학생은 5%였다. 반면 금천D고에서는 41%의 학생이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1개 받는 학생은 39%, 2개 이상 받는 학생은 20%로 나타났다.

경제적 어려움은 가족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고민이나 관심사가 생기면 강남C고의 학생은 33%가 부모를 찾았지만, 금천D고에서는 17%만 부모와 상담했다.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강남C고는 66%, 금천D고는 47%가 ‘그렇다’고 답했다. ‘부모님과 잘 지내고 싶다’는 비율은 강남C고가 58%, 금천D고가 41%였다.

청소년상담 기관인 문래WEE센터의 박양은 상담교사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교우관계, 진로, 고민 등에 많은 관심을 갖지만, 열악한 환경의 가정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급급해 자녀를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주 ‘아프다’며 보건실을 찾는 퇴행적 행동을 보이거나 비행ㆍ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양미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복지본부장은 “입시 위주 교육과 사교육으로 스트레스가 크더라도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가정에 속하면 가족을 ‘안전망’으로 느껴 만족도가 높다”며 “반대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유지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금천고 직업반 학생들이 서울 금천구 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직접 빵과 과자를 만들어 보고 있다. 직업반의 오후 수업은 이틀은 실습으로, 사흘은 이론수업으로 이뤄진다. 금천고 제공
금천고 직업반 학생들이 서울 금천구 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직접 빵과 과자를 만들어 보고 있다. 직업반의 오후 수업은 이틀은 실습으로, 사흘은 이론수업으로 이뤄진다. 금천고 제공

학교가 학생들에게 희망 불어넣어 줘야

이 같은 가족 해체의 대안은 결국 ‘학교’다. 18일 오후 서울 금천고 2학년 11반 교실에서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업이 한창이었다. “기말고사 총정리 시간을 갖겠다”는 교사의 말에 학생들이 책상 위에 꺼내 놓은 책은 다름 아닌 ‘제과제빵 기능사 총정리 문제집’이었다. 점심 시간 직후라 졸음이 쏟아질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강력분과 박력분의 차이, 글루텐과 효소의 역할 등을 묻는 교사의 질문에 열심히 책장을 뒤적였다.

금천고 2학년 11반은 서울시내 일반고 최초로 직업교육과정이 개설된 학급이다. 20명의 학생들은 오전에는 일반 교과과정에 해당하는 국어ㆍ영어ㆍ수학 등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제과제빵 이론과 실습 수업을 듣는다. 우모(17)양은 “중학생 때부터 제빵사가 되고 싶어 특성화고에 지원했지만 떨어졌었다”며 “어쩔 수없이 일반고에 진학했는데 학교에 직업과정이 개설돼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교육이 가족의 해체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전병화 금천고 교장의 생각이다. ‘삶의 목표’가 생긴다면, 열악한 가정 환경을 극복할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모든 아이들에게 비전과 목표를 심어주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며 “학교가 학생에게 꿈과 진로를 찾아줘 독립할 힘을 준다면 가정이 어렵더라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11반의 김순미(31) 담임교사는 “학교에 잘 나오지도 않던 아이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변화가 느껴진다”며 “교육 당국이 이 같은 프로그램에 더욱 많은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병화 교장은 “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에서 직업ㆍ진로 교육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며 “결국 교육 정상화가 우리 사회가 겪는 가족 해체 문제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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