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젊음의 열정 불사른 14년, 히로시마 '7번 유니폼' 애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젊음의 열정 불사른 14년, 히로시마 '7번 유니폼' 애정

입력
2015.06.18 17:59
0 0

메이플레즈 창단 멤버로 합류

日리그 전무후무한 8연패 이뤄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이 18일 서울 석촌동 자택에서 히로시마 메이플레즈 유니폼을 입고 태극기 앞에 서 있다. 일본팬들의 응원문구가 담긴 태극기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때 선물 받은 것이다. 이현주 기자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이 18일 서울 석촌동 자택에서 히로시마 메이플레즈 유니폼을 입고 태극기 앞에 서 있다. 일본팬들의 응원문구가 담긴 태극기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때 선물 받은 것이다. 이현주 기자

“이것만큼은 못 내주겠더라구요.”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를 쓴 임오경(44)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에게 딱 하나 남은 애장품은 일본 히로시마 메이플레즈 시절 입었던 7번 유니폼이다. 14년간 플레잉 코치와 감독으로 메이플레즈를 이끌었던 임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국가대표 유니폼, 운동화 등을 모두 기부했지만 메이플레즈 유니폼만큼은 내주지 못했다고 1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임 감독에게 히로시마에서의 시절은 그만큼 소중하다. 임 감독은 1994년 창단 멤버로 메이플레즈에 합류했다. 2년 만에 메이플레즈를 1부 리그로 올려놨고, 일본 리그에 전무후무한 8연패를 이끌 정도로 온 열정을 바쳤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시에서 주는 시민상을 받았고, 7년 연속 기자단 선정 인기상을 받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1992년 바르셀로나 금메달리스트라는 이유로 성화 봉송에 참여했다.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성화 봉송에 나선 외국인은 임오경 뿐이었다.

임 감독은 “히로시마에서 여성 스포츠인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하루 4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워킹맘으로서, 서울시청의 사령탑으로서, 스포츠 학도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일본에서 길렀다는 것이 임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메이플레즈 선수로 뛰면서 덜컥 임신을 하게 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포기했고, 팀 생활도 그만두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메이플레즈 회장은 임 감독에게 “출산하고 다시 복귀하라”는 말과 함께 임 감독을 팀으로 돌려보냈다. 20대 중반이면 은퇴를 생각하던 당시 한국 여자 선수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임 감독은 고마운 마음에 출산 이틀 전인 종합선수권대회 결승전까지 플레잉 감독으로 코트를 지켰고 출산 두 달 만에 선수로 복귀했다.

2008년 ‘제2의 고향’ 히로시마를 떠난 임 감독은 창단팀 서울시청의 지휘봉을 잡았다. 임 감독은 소속 선수들에게 ‘성적도 중요하지만 선수 이후의 삶을 개척하라’고 당부한다. 금메달을 딴 이후에도 일본에 건너 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얻었던 교훈을 잊지 못해서다. 임 감독은 “스포츠에서 여성들이 국위 선양은 다 하면서 이후 여성 스포츠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임 감독 역시 집안일과 육아를 책임지고 있지만 많은 여성 스포츠인들이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임 감독은 “워킹맘, 감독으로서 더 보란 듯이 열심히 살겠다. 그래야 후배들도 보고 배우지 않겠나”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