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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당~ 따당따~ 대장장이 父子의 망치질 하모니 신명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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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당~ 따당따~ 대장장이 父子의 망치질 하모니 신명나네

입력
2015.06.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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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통의 서울 도심 속 대장간, 기계 의존 않고 오로지 수작업

공장서 찍어내는 중국산과 달라… 석공·목수 등 전문가들이 주고객

아들이 60년 경력의 부친 대 이어

"잠깐 도우려던 게 벌써 20년째…"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불광대장간의 대장장이 박경원(오른쪽)씨가 모루 위에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올려놓자 아들 상범씨가 쇠망치로 힘차게 메질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불광대장간의 대장장이 박경원(오른쪽)씨가 모루 위에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올려놓자 아들 상범씨가 쇠망치로 힘차게 메질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골목길에서 경쾌한 쇠망치 소리가 들려온다. 쇠망치와 쇳덩이가 서로 치대는 그 소리엔 리듬과 박자가 엉겨 붙어, 골목길에 울리는 망치질 소리를 신명 나게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만 40년 넘게 이어져온 ‘불광대장간 교향곡’이다.

서너 평 남짓한 좁고 허름한 불광대장간 안. 백발 노인이 벌겋게 달궈진 쇠뭉치를 가마에서 꺼내 모루(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위에 올려놓자 중년 남성이 연신 메질을 해대고 있었다. “옳지. 옳지. 거기. 그렇지.” 노인의 추임새에 맞춰 중년 남성의 망치가 달아오른 쇠뭉치 위로 정확히 떨어지면, 노인이 쇠뭉치를 이리저리 돌려 모양을 다듬어 간다. 쇠뭉치를 잡고 있는 노인도, 망치질을 하는 중년 남성도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골목 밖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엄습한 17일, 대장간 안에는 가마에 불이 올라 바깥의 더위를 무색하게 했다. 시뻘건 가마 앞에서 달궈진 쇳덩이에 망치질에 몰두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선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이들은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불광대장간의 박경원(78)ㆍ상범(46)씨 부자다. 한 평생을 대장장이로 살아온 아버지는 20년 경력인 아들의 망치질이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쇠뭉치 돌리던 손을 잠시 멈추고는 “쯧쯧, 좀 더 야물게 치지…” 하고 혀를 차며 나무란다. 중년의 아들 대장장이는 아직도 스승인 아버지에게 단련을 받고 있다.

불광대장간은 서울 도심 속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공간이다. 모두가 첨단을 추구하는 시대지만 이들 부자는 여전히 과거를 고집하고 있다. 불광대장간에는 여느 작업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계화 장비를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대장장이 두 부자의 힘과 기술만으로 쇠를 녹여 두드리고 다듬어 연장을 만든다. 화덕에 유입되는 공기를 조절하는 10만원짜리 바람조절 장비와 날을 갈 때 쓰는 연마기만이 이 공간에 있는 단 두 개뿐인 기계화 장비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단련 작업을 손으로만 하는 대장간은 수도권에서 불광대장간뿐이다.

박씨가 대장장이 생활을 시작한 것은 60년이 넘는다. 강원 철원이 고향인 박씨는 한국전쟁이 났을 때 경기 용인으로 피란을 떠났다. 당시 13세였던 박씨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품삯을 대신해 하루 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는 조건으로 대장간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휴전이 됐지만 격전지였던 고향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더라고. 서울로 나와서 새로 살 길을 찾아야 했지.” 피란길에 허드렛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배웠던 대장장이 일을 떠올리며 서울의 한 대장간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한 대장간 일은 평생의 끼니를 책임져주었다.

아들 상범씨는 군 전역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간 일을 시작했다. 작업 인부를 구할 수 없어 휴가 때마다 아버지를 돕다 절로 대장장이가 됐다. “휴가를 나와보니 어머니가 아버지 일을 돕는데 숟가락을 든 어머니 손이 떨리시는 것을 보고 제가 대신하기로 마음 먹었죠. 처음에는 저도 인부 구할 때까지만 도울 생각이었는데 평생 직장이 됐어요”

사람 둘이 간신히 움직일 공간밖에 없지만 불광대장간에는 쇠를 가지곤 못 만들어내는 것이 없다. 망치와 도끼를 만들고 호미 낫 쇠스랑 같은 농기구도 만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서울에서 ‘대장간에서 살 게 있을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찾아와 주문을 한다. 동네 아주머니가 화단 손질한다고 호미를 사가고 중년 남자는 장작을 패려는지 튼실한 도끼를 사간다. 대장간을 찾은 한 손님은 “마트에서 파는 중국산 공산품이 가격은 싸지만, 몇 번 사용하고 나면 금방 고장이 나서 이렇게 수제품을 사러 오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 캠핑 인구가 늘면서 손도끼나 망치, 장도리 같은 캠핑용 장비도 많이 나간다. 아들 상범씨는 “요즘 제일 많이 나가는 건 호미하고 괭이에요. 텃밭 가꾸고 주말농장 하시는 분들도 풀을 제거할 때 쓰는 도구를 많이 사갑니다. 캠핑용 장비도 많이 나가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불광대장간의 주 고객은 전문가들이다. 손으로 만들어야 사람 손에 꼭 맞는 연장을 만들 수 있고 기계로 찍어낸 공구보다 수명도 훨씬 길다. 그래서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는 석공이나 목수들이 더 찾는다. 도구에 ‘불광’이라고 찍힌 마크가 그들에게는 명품 상표인 셈이다.

때마침 옷을 곱게 차려 입은 70대 할머니가 대장간을 찾았다. 경기 안산시에서 낫을 사러 왔다면서 크고 무거운 낫과 작고 가벼운 낫을 1개씩 들고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잠시 작업을 쉬고 있던 상범씨가 나서 “가벼운 것으로 해요. 우리집 것 다 튼튼해요. 할머니 나 못 믿어요? 내 말 믿었다 속은 적 없었잖아요”며 낫을 골라주자 할머니는 “알지, 왜 못 믿어. 여기 다닌 지가 얼만데…”라며 바로 돈을 내민다.

불광대장간은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불러모은 단골들이 전국에 많다. 서울은 물론 강원 홍천, 경북 포항 등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온다. 그들에게는 불광대장간이 단순하게 공구를 구입하는 곳이 아니라 추억의 장소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 단골손님 한 분이 오랜만에 오셨는데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나서 추억이 남아있는 곳을 돌아보는 중에 불광대장간을 찾았다고 하시더군요. 가슴이 아프면서도 ‘내가 단순하게 도구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아들 상범씨에게는 작은 꿈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대장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상범씨는 “우리 전통 기술이 다 사라지고 있잖아요.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하는 대장간이라면 외국 관광객들이나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땅값이 너무 비싸 결국 돈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또 다른 꿈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할아버지와 자신의 뒤를 이어 3대가 같이 대장간을 하는 것이다. 상범씨는 “일이 힘들지만 아들이 이 일을 하겠다면 좋겠어요. 아직은 ‘아빠가 할아버지하고 같이 일하는 것처럼 나도 아빠하고 일하고 싶다’고 얘기는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죠”라고 말했다.

아버지 박경원씨의 꿈은 소박하고 진중했다. 앞으로 이 일을 10년은 더 했으면 좋겠다는것.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옛 방식 그대로 서너 시간씩 꼬박 쇠를 두드려 작은 물건 하나를 만드는 대장장이 아버지의 정성은 변하지 않았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뜻을 소중히 이어가고 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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