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받기 위해 1년 가까이 준비한 직장인 A(43)씨는 17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발송한 이메일을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산상 문제가 생겨 26일로 예정된 문화교류비자(J1) 발급 인터뷰를 연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로부터 올 여름 연수 출국 허락까지 받은 터라 비자를 받지 못할 경우 지금까지 노력이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부랴부랴 비자 발급 대행사를 통해 다시 잡은 인터뷰 날짜는 다음달 초순. A씨는 “인터뷰 뒤 택배로 비자를 받기까지 일주일쯤 걸리는데 출국예정일까지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아 혹시 기한 내에 못 받게 될까 봐 마음이 초조하다”고 말했다.
15일부터 주한 미대사관이 보낸 이메일을 받고 놀란 이들이 많았다. 전산 오류로 예정돼 있는 비자 발급 인터뷰 일정을 연기한다는 통보 때문이다. 대사관 측은 문의가 폭주하자 홈페이지에 “현재 미 국무부 영사국 소속의 해외주재 대사관과 영사관에서는 미국 여권과 비자 발급시스템에 발생한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비자 신청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며 “특정 국가나 미국시민권 서류, 비자 종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대사관 측의 공식 해명에도 비자 발급 지연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연관돼 있다는 억측이 나돌았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메르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방미 일정이 연기됐다”는 글이 떠돌면서 그 여파가 일반인에게까지 미친 것 아니냐는 과잉 해석이 퍼진 것이다.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전해 들은 직장인 B(38)씨도 불안해하며 이날 인터뷰를 위해 대사관을 찾았다. 다행히 그는 예정대로 비자 발급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알아보니 인터뷰 연기는 이달 9일 이후 신청한 사람에게만 해당됐다.
미 대사관은 급하게 출국을 해야 하는 민원인에게는 긴급 인터뷰 예약 신청도 접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님 주한 미대사관 공보보좌관은 “컴퓨터의 기술적 결함 탓에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똑같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메르스 때문은 확실히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B씨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이라며 “메르스 공포가 만연하다 보니 공개된 정보도 믿지 못하고 피해 의식에 젖어 있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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