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궁핍한 삶 소식에 1958년 전직 대통령법 제정
포드, 유료 강연 등 첫 상업적 활동… 퇴임 후 조용한 관행 깨져
작년 5명에 36억원 지원, 4월 지원 축소 법안 상정
"부자 前대통령 혈세 지원 줄여야" 유권자 비판에도 시행 가능성은 희박
단 한 차례의 선거도 치르지 않고 미국 대통령에 오를 수 있을까. 미국의 인기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1913~2006)도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나 부통령으로 선출된 적 없이 대통령이 됐다. 1973년 스피로 애그뉴가 부통령을 사임하자,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지명해 하원에 의해 승인됐다. 이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74년 8월 사임하면서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는 또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장수한 인물이기도 하다.
가난했던 미국 퇴임 대통령
그런데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포드 전 대통령의 알려지지 않은 기록을 소개했다. 바로 퇴임 후 ‘대통령이었다’는 신분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최초 인물이라는 것이다. 포드 전 대통령은 1977년 퇴임 후 1년도 안돼 100만달러를 벌었다. ‘20세기폭스’ 영화사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고 심지어 쇼핑센터 개소식에서도 유료강연을 했다. 덕분에 캘리포니아 주 온천도시 팜스프링스와 그가 좋아하는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콜로라도주 바일에 저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포드 이후 미국 전직 대통령들은 지미 카터만 제외하고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유료 강연 등 대통령 신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포드 이전까지만 해도 퇴임한 미국 대통령은 수도승처럼 사는 것이 관행이었다. 공직을 맡거나, 자서전을 펴내 인세를 얻거나, 캘빈 쿨리지(1872~1933ㆍ30대)처럼 신문에 기고하는 것 이외 외부 수입은 기대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품위 유지를 명목으로 국가에서 돈이 지급되지도 않았다. 해리 트루먼(1884~1972ㆍ33대) 대통령이 퇴임 후 궁핍 속에 산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1958년 ‘전직 대통령법’(FPA)이 제정돼 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FPA는 미국 정부에 전직 대통령의 품위 유지를 위한 금전적 지원은 물론이고 적절한 사무공간과 사무실 직원, 장비를 지원토록 규정하고 있다. 사무실은 규모 제한없이 미국 내에만 있으면 된다. 이외에도 공적인 차원의 여행경비, 우편ㆍ통신비도 지원한다.
조지 W. 부시, 2014년 12억원 수령
지난해 FPA 규정에 따라 전직 대통령(미망인 포함) 5명에게 지급된 액수는 총 325만2,000달러(36억원). 지원을 받는 이는 지미 카터, 조지 H.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이다. 5명 가운데 ‘투 톱’은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으로 전체 지원액의 62.2%를 차지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109만8,000달러가 지원됐고, 빌 클린턴과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각각 92만4,000달러와 79만4,000달러가 지급됐다. 낸시 레이건은 대통령 미망인에 지원되는 수당(연간 2만달러)은 거부하면서도 통신비 명목의 6,000달러는 수령했다. 이는 정부가 지급하는 수당을 받으면, 다른 외부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한 FPA 규정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인별로 지원액이 꽤 차이가 나는 것은 ▦전직 대통령 수당 ▦연금 등은 비슷하지만 사무실 운영경비나 의료비 지원액에서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수당(1인당 9만6,000달러)과 연금(21만달러 내외)은 사실상 일률적으로 지원되는 항목이다. 생존한 전직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연금은 장관급 연봉 수준에 맞춰 매년 정해지는데, 2015년에는 평균 20만3,700달러로 지난해(20만1,700달러)보다 소폭 올랐다.
이 연금은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는 해의 1월20일 정오부터 기산되며, 매월 지급된다. 한국은 탄핵ㆍ소추 받은 경우에는 연금 지급을 금지하지만, FPA에는 별도 규정이 없다. 탄핵ㆍ소추로 정상적으로 임기가 종료되지 않거나 퇴임 후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져도 원칙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불명예 퇴진한 닉슨 전 대통령도 생전에 각종 정부 지원을 받았다.
반면 의료비 지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복리후생비와 사무실 운영비, 공무 여행경비 등은 개인별 활동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난다. 고령 탓에 외부 활동이 뜸한 지미 카터,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빌 클린턴이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지원된 금액이 훨씬 많다. 조지아주 애틀랜타(7,070 평방피트ㆍ198평)의 카터 전 대통령 사무실에는 11만달러가 지원된 반면, 뉴욕 시내(233평)와 텍사스 댈러스(231평)의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사무실에서는 한화로 각각 4억5,000만원이 넘는 돈이 지출됐다.
전직 대통령 사무실 운영비 지원은 퇴임 후 6개월 이후부터 시작된다. 사무실 규모나 운영비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연금이 각료급 기준에 맞춰지는 만큼 사무실 책상과 의자 등 집기류 등도 그에 준하는 수준에서 맞춰진다. 사무실 직원 월급도 정부가 지급한다. 퇴임 후 첫 30개월은 직원 월급 명목으로 연간 15만달러까지 지원된다. 이후에는 연간 9만6,000달러를 넘지 못한다. 사무실 직원 급여는 연방정부 2급 수준(2015년 18만3,000달러)을 넘지 못하지만, 물론 전직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그 이상을 별도 지급할 수는 있다.
여행경비는 공무 목적일 경우 전직 대통령과 수행원 2명에 대해 지원된다. 한도는 연간 100만달러이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해서는 연간 50만달러까지 경비가 보조된다.
특별경호와 국장 예우
FPA 규정 이외에도 전직 대통령은 연방정부로부터 비밀 경호지원도 받는다. 경호팀 운영에 따른 경비는 FPA와는 별도 이뤄지며 그 액수는 공개되지 않는다. 또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신ㆍ구 대통령이 이ㆍ취임을 준비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도 연방정부에서 지출된다. 퇴임하는 대통령의 경우 임기 종료 30일부터 이후 최장 7개월간 사무실 이동 및 자료 정리와 관련한 경비를 350만달러까지 정부가 책임진다.
전직 대통령은 사망해도 예우를 받는다. 전직 대통령이 사망하면 현직 대통령은 반드시 이를 공포하고, 연방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30일간 반기(半旗)를 게양토록 명령해야 한다. 또 장례는 원칙적으로 국장으로 치러지며, 유족이 원하면 군 의장대가 지원한다.
대통령이 의회에 전직 대통령 사망에 따른 국장을 보고하면, 장례 업무를 주관하는 대리인으로 국방부 장관이 지명된다. 장례절차 지원에 군 의장대가 필수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신은 장례기간 중 군 의장대 호위를 받으며, 장례식 하루 전에는 미 의회 중앙홀(로텐다)로 옮겨진다.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 미군의 최고통수권자였던 만큼 워싱턴 외곽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게 관행이다. 그러나 고인의 희망에 따라 워싱턴 이외 지역에서 매장될 경우에는 시신 운구가 이뤄질 기차역이나 공항 등에서 장례식이 치러질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군 추모비행 등도 이뤄질 수 있다.
전직 대통령 예우 제한 입법
원래 부자인 전직 대통령들에게 굳이 국민의 혈세를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론이 미국 조야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4월14일 미 하원에는 정부개혁위원회 제이슨 차페츠 위원장 주도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지원 규모를 감축하는 내용의 ‘대통령지원 현대화법’이 상정됐다.
이 법안은 전직 대통령에 지급되는 연금 규모를 연간 20만달러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또 전직 대통령이 유료 강연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연간 40만달러를 넘어서면, 그 초과분 1달러에 대해 1달러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정부 연금을 줄이는 내용도 포함됐다. 반면 미망인에 대한 지원은 현재 2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상향조정 됐다. 이와 함께 수당ㆍ연금 이외에 일괄적으로 20만달러를 지급하되, 현재 과도하게 집행된다는 비난을 받는 여행경비ㆍ사무실 운영비 지원은 중단하는 방안도 담고 있다.
현재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볼 때 이 법안이 통과돼 시행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클린턴 전대통령의 경우 유료 강연료로만 퇴임 후 1억달러가 넘는 돈을 버는 등 미국민 기대와 동떨어지게 활동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1인당 국민소득과 현직 대통령 연봉 등의 요소를 감안하면 절대 액수는 차이가 나지만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도 미국 전직 대통령 수준의 지원을 받고 있다. 2014년 기준 미국(5만4,678달러)과 한국(2만8,739달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버락 오바마(40만달러) 대통령과 박근혜(18만5,000달러ㆍ2억504만원) 대통령의 연봉 사이에는 2배 내외의 차이가 나는데, 지난해 달러로 환산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금(13만달러)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31만달러) 대비 비슷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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