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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朴의 남자' 이상돈, 野에 애정 어린 쓴소리… 왜?

입력
2015.06.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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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더좋은미래' 초청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한국 정치 쇄신의 과제'라는 주제의 이번 강연회의 연사는 다름아닌 이상돈(사진) 중앙대 명예교수였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박근혜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꼽혔습니다. 2011년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며 2012년 19대 총선 승리에 큰 공을 세웠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까지 맡았습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정치 개혁 등을 놓고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고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를 꾸준히 비판해 왔습니다. 지난해 이 명예교수는 새누리당을 탈당했습니다.

그런 이 명예교수를 두고 지난해 가을 새정치민주연합은 쑥대밭이 돼다시피 했습니다. 지난해 9월 박영선 전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당의 새로운 비대위원장으로 이 명예교수를 영입하려 했다가 당내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당시 상당수 의원들은 "과거 적(새누리당)으로 우리를 공격하는데 앞장섰던 인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느냐"며 "더구나 박 위원장이 사전 논의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영입을 결정하려 한 절차적 정당성도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반면 일부에서는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우리에게 기존의 잘못된 점을 확실히 깨려면 누구든 데려와 역할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반발이 워낙 거셌고 박 위원장은 결국 이 명예교수의 영입을 포기했습니다. 게다가 박 위원장은 그 후유증으로 얼마 후 스스로 사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날 강연은 이 명예교수가 자신과 악연아닌 악연이라 할 수 있는 새정치연합 의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새정치연합의 문제점을 포함해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처음으로 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특이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한 것이 더좋은미래라는 점이다. 지난해 이 명예교수 영입으로 당이 어수선했을 당시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들도 그의 영입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날 강연을 준비한 더미래연구소 홍일표 사무처장은 "설마 초대에 응해주실까 했는데 선뜻 좋다고 해서 놀랐다"며 "우리 측 사정으로 강연 날짜가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괜찮다고 하시고 강연 내용도 사전에 준비를 꼼꼼히 해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좋은미래' 주최로 열린 '이문현답(異問賢答)'에서 '한국정치 쇄신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좋은미래' 주최로 열린 '이문현답(異問賢答)'에서 '한국정치 쇄신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이 명예교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정치연합의) 정책과 노선을 상당히 오른쪽으로 수정해야 한다"거나 "(김상곤 위원장의) 혁신위원회에게 중요한 것은 당의 방향성 문제인데 집권을 위해서는 '오직 진보만이 옳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계층에 너무 집착한 반면 박근혜 후보는 '100% 대한민국'을 외쳤고, 유권자들에게는 박근혜 후보의 구호가 더 잘 먹혔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최근 영국 노동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것을 예로 들며 중도 공략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야당이 복지에 편중하면서 쓸데없이 무상복지 시비를 일으키거나 하는 것은 재검토해야 한다. 선거에서 세금을 올리겠다는 정당이 승리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인적쇄신 문제에 대해서도 이 명예교수는 "제대로 실천이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물갈이라는 말 자체도 굉장히 어설프고, 무의식적으로 보편화된 말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정작 바꿔야 할 대상은 어항 속 물이 아니라 어항 속 물고기(국회의원)들인 것 아니겠느냐는 '재미 없는 농담'도 곁들였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어쨌든 "다선의원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은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2012년 총선을 보면 (한나라당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은 없더라"며 인위적 인적 쇄신의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과거 한나라당 활동 시절을 떠올리며 "유권자들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당, 오래 계셨던 분들이 아름답게 용퇴하는 모습을 잘 보이는 정당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며 "동시에 의외성이 있는 인물이 영입되는 모습을 원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또 보수의 비판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중도화 전략이 필요하며,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너무 묶여있어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며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 명예교수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과연 당내에 인적쇄신에 대한 의지와 이를 실현할 리더십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지금처럼 총선이 주구장창 남았는데, 어떻게 인적쇄신 논의가 가능한 것인지 회의감이 있다. 급하니까 (인적쇄신 얘기를 하면서) 묻어가려는 것 아닌가"라며 "인적쇄신 문제는 가장 마지막에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천 방식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현실상 미 캘리포니아주가 시행하고 있는 '탑 2 프라이머리' 방식의 결선투표가 현실적으로 가장 낫다고 본다"는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명예교수가 새정치연합을 향해 이토록 공을 들여가며 애정어린 쓴소리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힌트는 그의 말 속에 들어있는 듯 했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이날 강연의 첫머리에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지했던 황영교씨와 한 때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그는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박 대통령의) 한계를 미리 알고 미리 접었다는 점"이라며 "제가 비판적 얘기를 많이 하신다고 했는데 제가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이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이미 실패했다고 본다. 야당이 대안세력으로 집권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그러려면 2012년 대선에서 미완의 과제였던 국민대통합을 위한 쇄신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날 강연 후 이 명예교수와 함께 점심을 했다는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과거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이루려던 목표가 무산되면서 크게 실망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말씀하시더라"며 "우리와는 기본적으로 결이 다른 보수주의자이지만 그의 시각에서 우리의 잘못이 무엇이고 그걸 고쳐나가면서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점까지 고쳐주길 바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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