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귀가길. 빌라 초입에 한 청년이 온몸을 웅크린 자세로 앉아있다. 약간의 연민과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한다. 술 취해 저러고 있는 사람을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언젠가는 나도 저러고 있은 적이 있었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그게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거나 두려움을 줄 수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만취해 몸을 못 가누는 거거나, 실연당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저러는 거겠지. 짐짓 못 본 척 지나쳐 현관에 들어선다. 술 냄새가 심하진 않다. 몸을 조금씩 꿈틀거리는 걸 보니 자세의 불편함을 인지하고는 있는 듯하다. 다시, 연민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저렇게 버려둬도 괜찮을까. 집에 들어왔으나 등이 여전히 찜찜하다. 그래, 다시 문을 열고 입구를 살핀다. 사라졌다. 현관을 나와 골목을 살핀다. 휘청휘청 걸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공연했던 연민이 사뭇 더해진다. 그가 앉아있던 자리를 망연히 살핀다. 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봉투 따위가 마구 널브러져 있다. 그래본 적 있다. 쓰레기 더미 곁에서 감정의 분방한 찌끼들을 뒤섞어 새벽녘 종을 울리며 달려온 쓰레기차에 실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하고 싶었던 적이. 그러고 났을 때 자못 한심하고 불행해 보이던 내가 이상하게도 더 사랑하고 싶은 나였던 적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 청년이 왠지 내 방에서 자고 있을 것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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