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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집단공포

입력
2015.06.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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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온 나라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것을 방인진공(邦人震恐)이라고 한다. 온 나라가 공포에 떤다는 뜻에서 거국진공(擧國震恐)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후기 문신 장유(張維ㆍ1587~1638)가 쓴 장만(張晩ㆍ1566~1629)의 ‘신도비명(神道碑銘)’에는 “기미년(광해군 11년)에 우리 군사가 요동(遼東)으로 건너갔다가 심하(深河)에서 패배하자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였다(擧國震恐)”고 말한 것처럼 주로 전쟁에서 패했을 때 사용한다. 광해군 때 강홍립(姜弘立)이 이끄는 조명군(助明軍)이 요동에서 후금에게 패전하자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였다는 뜻이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집단공포는 더 자주 발생한다. 전염병은 대역(大疫), 여역(?疫)이라고 하는데, 일시적인 전염병은 시기(時氣)라고도 한다. 전염병이나 홍역의 발병 원인을 어떤 옛 사람들은 귀신 때문으로 여겼다. 그러나 생육신의 한 명이었던 추강 남효온(南孝溫)은 ‘귀신론(鬼神論)’에서 창진(瘡疹ㆍ홍역)이 귀신 때문에 발생한다는 설을 비판하며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반드시 나쁜 즙(汁)을 마시게 되는데, 밖에서 시기(時氣)가 부딪치고 악한 독이 안에서 응해서 발생한다”면서 귀신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나마 창진은 전염병이 아니지만 전염병의 경우 대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병이 발생한 집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현종 11년(1670ㆍ경술년) 여름 전염병(大疫)이 발생하자 미수(眉?) 허목(許穆)은 서쪽 이웃집으로 피해 무사했다. 2년 후에도 다시 전염병이 돌자 허목은 다시 그 이웃집으로 피병(避病)했는데 이번에도 무사했다. 허목은 “다행히도 강녕해서 아무 병도 앓지 않았다. 날마다 옛 서적을 보면서 옛 사람들이 즐기던 것을 바꾸지 않은 것을 기뻐했다”면서 “귀신이 임했지만 나에게 후하게 대우해주었으니 지금 허름한 내 집으로 돌아와서 아랫목 신에게 사례하는 글을 쓴다”면서 ‘서쪽 이웃집 아랫목 신(室奧)에게 사례함’이라는 글을 썼다.

그런데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대상이 부모형제면 전염병이라도 피하지 못하고 간호해야 했다. 그래서 전염병이 돌면 효자나 열부들이 많이 죽었다. 때로는 전염병도 피해가는 인물들이 있어서 화제가 되는데 진(晉)나라 유곤(庾?)이 그런 인물이었다. ‘진서(晉書)’ ‘효우(孝友)열전’에 따르면 유곤은 두 형이 전염병으로 죽었는데, 또 다른 형인 유비(庾毗)도 위태로웠다. 부모와 다른 아우들은 모두 집밖으로 피했지만 유곤만은 홀로 남아 유비를 간호하고 먼저 죽은 형들의 영구(靈柩)를 어루만지며 슬피 울었다. 이렇게 한지 100여일이 지났는데도 병에 전염되지 않고 형의 병까지 낫자 큰 화제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에 전염병(?疫ㆍ여역)이 자주 발생했는데 중국과 통하는 길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종 19년(1524) 8월경부터 평안도 여러 고을에 전염병이 발생했는데 이듬해 2월 평안도 관찰사 김극성(金克成)의 치계에 따르면 모두 7,724명이나 사망했다. 중종은 평안도에 전염병이 발생하자 내외에 구언(求言)하는 전지(傳旨)를 내렸다. 하늘이 임금의 정사 잘못을 견책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자신의 정치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중종은 “내가 즉위한 이래 날마다 죄를 얻을까 경계하고 두려워하면서 다스린 지 이제 19년인데 정성이 부족하고 은택이 극진하지 못해서” 장마와 전염병이 서쪽 변방에 퍼지고 있다면서 구언했다. 중종은 여기에서 “나의 모든 잘못과 조정 밖에서 관계되는 것을 들은 대로 각각 극진하게 아뢰어서 감추지 말고 촉휘(觸諱ㆍ꺼리는 것을 범함)를 꺼리지 말라. 내가 모두 받아들이겠다”(‘중종실록’ 19년 10월 2일)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사 잘못을 직설적으로 지적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전염병이 돌면 공포가 엄습하고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기 마련이다. ‘순자(荀子)’ ‘대략(大略)’편에는 “구르는 구슬은 사발에서 멈추고 유언비어는 지자(知者)에게서 멈춘다”(流丸止於?臾 流言止於知者)는 말이 있다. 구르는 구슬은 사발 속에 들어가면 더 이상 구르지 못하고, 유언비어는 현명한 사람에게서 그친다는 뜻이다.

목은 이색의 시에 ‘안석위기(安石圍?)’라는 시구가 있다. 안석이 바둑을 둔다는 뜻인데 진(晉)나라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 사안(謝安)이 전진(前秦)의 부견(?堅)이 백만대군으로 쳐들어와서 온 나라가 두려움에 떠는데 태연히 바둑을 두어 진정시켰다는 이야기가 ‘진서(晉書)’ ‘사안(謝安)열전’에 실려 있다. 진나라 사람들이 공포를 거둔 데에는 사안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메르스 때문에 집단공포가 거국진공(擧國震恐) 상태로 번지고 있다. 중종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부터 나서서 국민들에게 정부의 무능을 사과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집단공포나 유언비어를 진정시키는 길이리라.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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