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관료들과 회의할 때 즐겨 쓴다는 썰렁 개그 한 토막이다. 대통령이 묻는다. “우문현답이 뭔지 아세요” 설마 사자성어 뜻풀이 하란 걸까? 좌중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순간, 대통령이 서둘러 답한다. “우문현답이란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란 뜻입니다.” ‘빵’ 터지는 웃음에 이어 그 뜻을 곱씹게 되더란 걸 보면 나름대로 성공적인 유머다. 책상에 앉아서 펜대만 굴려대지 말라는, 국민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현장에도 좀 나가보라는, 대통령의 의지를 담고 있는 간절한 유머다.
하지만, 아뿔싸! 임기 중반을 지나는 와중에도 관료조직의 환골탈태란 어디서도 찾을 길 없다. 국가주도 성장시대를 구가했던 경제 산업 분야 책상물림들의 권세는 여전한 반면, 보건, 복지, 고용, 안전 등 사회서비스 현장의 공무원들은 찬밥신세 그대로다. 발전과정의 성장통이나 백신이라 여겨야 할까?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세월호의 슬픔에 이어 난데없는 메르스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책상물림 관료사회의 현장무시가 그 어느 때보다 밉살스럽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줄 세우기로 현장을 우습게 본 조선시대의 패습이 여전한 것 같아 한숨만 나오는 지경이다. 당장 지금의 민생과 안전보다는 수십 년 후 재정문제부터 챙기려드는 것도 책상물림의 전형적 한계일 것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복지국가의 행정은 국민의 일상, 바로 그 현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민생의 현장을 중시하는 대통령의 소망이 행정에서 구현되려면, 공무원 업무에 관한 인력구조조정부터 챙겨야 마땅하다. 정말 힘든 사람들을 발굴하거나 가장 위급한 상황부터 제어할 수 있는 ‘찾아가는 행정’이 되려면 대국민 사회서비스 분야의 인력확충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보건, 복지, 고용, 안전 등 사회서비스분야의 전문 인력은 늘려주고 인사상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현장중심의 행정이 구현될 것이다. 국민행복국가를 지향하는 박근혜정부의 책상물림형 공무원 인사현황이 기존정부와 다르지 않으니, 현장을 중시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은 있으나 그 실행이 요원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불일치'가 발생하고 만다.
복지예산 100조 시대, 사회서비스 전문인력의 확충과 우대가 있어야 현장의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공무원 총원을 유지하면서도 보건, 복지, 고용, 안전 등 현장형 사회서비스 관련직으로 전환배치하거나 장기계약 방식으로 민간 전문인력을 활용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국의 의지박약이 문제이지 대안이 없는 게 결코 아니다.
새마을운동 시절 대규모로 뽑힌 베이비부머 세대 지방공무원들이 퇴직하는 시점인데 인력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새로 뽑을 공무원들을 보건, 복지, 고용, 안전 현장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할 텐데, 때를 놓치면 구시대적 규제업무에만 자동 충원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메르스 정국에서 중앙과 지방이 손가락질 하고 다투는 형국이지만, 사태의 근원으로서 책상물림 탁상행정의 시스템 왜곡은 지방정부들에서 더 큰 문제다. 선진국의 지방공무원 구성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분야의 지방공무원 비중은 그들의 10분의 1에 불과한 상황이란다. 선거로 뽑힌 단체장들이 '도장 찍기' 규제인력만 늘리는 등 파행적인 인사행정을 반복한 결과라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정부인력 전반, 특히 지자체 인력관리에 관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 째깍째깍 저무는 지금, 중앙과 지방이 대오를 갖추어 하루빨리 개혁에 나서야 한다.
세월호나 메르스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올바른 방법은 편을 갈라 다투고 손가락질 하는 한풀이의 정치가 아니다. 안전하고 따뜻한 국민중심의 복지국가를 향한 국가개조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치만이 또 다른 후진국형 희생을 막아낼 유일한 선택지다. 적어도 대통령의 이 말만은 옳다.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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